“권위적이지 않고 돈 문제도 깨끗하게…” 서울서 첫 평교사 출신 교장 지명 이용환 상원초등학교 교사

Է:2011-02-17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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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적이지 않고 돈 문제도 깨끗하게…” 서울서 첫 평교사 출신 교장 지명 이용환 상원초등학교 교사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소속, 교장자격증 미소지자. 서울 학교에 두 가지 ‘특이 조건’을 가진 교장이 탄생할 모양이다. 지난 15일 내부형 교장공모제에 따라 최종 지명된 38명 중 노원구 상원초와 구로구 영림중 교장에 전교조 소속 평교사 두 명이 지명됐다. 전국적으로는 이미 17명의 평교사 교장이 임명됐지만 서울에서는 처음이다.

내부형 교장공모제란 경력 20년 이상 교사 가운데 지원을 받아 교장을 선발하는 제도. 자율학교 가운데 15% 이내에서만 시행된다. 한국교원총연합회가 반발하고, 교육과학기술부가 맞장구치는 갈등 속에서 부각된 건 ‘전교조’라는 딱지였다. 그래서 모두들 놓치고 있지만, 개발시대 한국 학교를 지탱해 온 교육권력 중 하나, 교장의 자리가 지금 중대한 도전에 직면했다. 연공서열과 점수제로 꽉 짜인 교장 재생산 구조. 그 시스템의 문밖에서 낯선 DNA의 교장이 막 탄생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상원초 교장으로 지명된 이용환(52) 교사를 15일 오후 만났다. 올해로 교사 경력 30년을 맞은 5학년 5반 담임 선생님은 2주 후 이 학교의 교장이 될 준비로 분주했다. 그에게 승진 경쟁에서 물러나 있던 평교사만이 가질 수 있는 ‘교장의 자격’에 대해 들었다.

평교사가 기억하는 교장

이씨는 교장을 꿈꾼 적이 없다고 했다. 교장이 되겠다는 생각은 초임 교사 시절 접었다. 교장 때문에 학교를 그만둘 뻔했으니 사실 그에게 교장은 꿈이라기보다 장애물 같은 것이었다.

그의 반에 총명한 아이가 한 명 있었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였다. 어린이회장단 선거에 나가더니 덜컥 회장에 당선됐다. 교장이 담임교사였던 이씨를 불렀다.

“회장 부모에게 기부를 받아내라고 종용하더군요. 제가 거부하니까 (교장이) 직접 나서서 대형 TV에다 전 교직원 회식비까지 받아냈어요. 그때 생각했죠. 이런 학교라면 더 이상 교직에 있을 이유가 없다.” 그대로 야간대학원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졸업 후 새 직장을 잡으려던 이씨는 비슷한 고민을 가진 교사들을 만나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그 후 교직생활하면서 교장선생님을 스무 분 정도 만났어요. 그중 존경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어요. 불행한 일이죠. 크게 하자가 없다, 무난하다 할 분이 두 명 정도. 나머지는 대단히 권위적이고, 금전 문제에 깨끗하지 못하고, 가르치는 일보다는 승진을 위해 노력하는 분. 그런 인상을 받았죠.”

혼자 결정하고, 자신의 결정에는 학교 전체가 따라야 한다고 믿으며, 타인에겐 엄격하되 자신과 돈에는 너그러운 제왕 같은 존재. 평교사 이씨가 요약한 대한민국 교장의 모습이다.

“과거와 비교해 많이 달라졌다고들 하지만 학교의 회계 처리는 아직도 너무 불투명해요. 수학여행, 수련회, 공사를 둘러싼 거래에 대해 많은 교사들이 의혹을 갖고 있어요. 이런 거예요. 교사들이 학습준비물이나 교구기자재를 요구하면 꿈쩍도 안 하다가 느닷없이 별로 시급해 보이지도 않는 공사를 벌이는 거죠. 화단 연못 같은 걸 만들거나, 운동장 스탠드를 대리석으로 깔거나, 나무를 심거나. 그런 게 다 몇 천만원짜리거든요.”

가격은 터무니없이 높이 책정된 반면 정작 자재와 공사는 엉터리. 교사들은 뭔가 있다, 뒷돈이 오간 게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심증은 있는데 물증은 없는, 그래서 뭐라고 대놓고 말할 수도 없는.”

DNA가 다른 교장이 꿈꾸는 학교

이씨는 나쁜 교장이 나쁜 시스템의 결과물이라고 믿는다. 교장이 되는 일은 철저한 점수 경쟁이다. 교사 집단은 30대 중반 무렵, 승진 트랙에 올라선 교사와 포기한 교사로 갈린다고 했다. 승진하려고 결심한 순간, 가르치는 본업까지 희생한 점수 쌓기 경쟁은 시작된다. 가장 중요한 건 직속상관인 교장·교감의 눈 밖에 나지 않는 일. 승진점수(200점)의 50%를 차지하는 근무평정(100점)이 교장·교감의 평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과학교육연구대회’ ‘인터넷경진대회’ ‘열린수업연구대회’ 같은 각종 연구대회에도 목숨을 걸어야 한다. 입상하면 편당 0.25∼0.5점을 쌓을 수 있다. 대부분 교육청 주최인 이런 대회를 노리려면 교육청 인맥 쌓기 역시 필수다.

“이렇게 교장이 된 이들은 권위적 위계구조에 익숙합니다. 수직적 지시로 교사들을 통제하려 하고 행정업무 중심으로 교사를 평가합니다. 행정에 유능한 교사가 좋은 교사라고 생각하죠. 위에는 순종적이고, 아래에는 권위적이고.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현 시스템에서 승진한 상당수 교장들이 위만 보고 일합니다.”

나이로만 보자면 이씨 역시 점수 쌓아 교감으로 승진해야 할 시기다. 하지만 자칭 “현 구조에서는 결코 교장이 될 수 없는 경력의 소유자”인 그는 오래 전 점수 계산을 포기했다. 그가 교장이 된다면 시스템의 낙오자가 평교사에서 교장으로 직진한 것이니 일종의 반란이다.

이씨는 다른 교장이 다른 학교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첫 과제는 교사에게 가르치는 본업을 돌려주는 일이라고 했다. 교사의 과도한 행정업무부터 덜어줄 계획이다. “교사가 방과후학교를 맡는다고 해보세요. 강사 섭외하고, 신청서 받고, 돈 걷고, 스케줄 짜고. 그것만으로도 온전히 한 사람 업무인데 그걸 수업하는 교사가 담당한다고 해보세요. 보통 일이 아닙니다.” 이씨는 행정전담요원을 뽑겠다고 했다. 교무행정은 교장과 교감, 전담요원 세 사람이 책임진다. 교사에게 수업 준비와 연구에 투자할 시간을 돌려주기 위해서다.

“동료 교사가 어느 날 ‘가르치는 일에만 전념하게 해준다면 밤을 새워서라도 수업 준비를 하겠다’고 했어요. 그때 정말 눈물나게 감동했습니다. 저도 교사입니다. 누구보다 교사를 잘 알고, 교사의 마음을 잘 압니다. 교사의 열정을 믿기 때문에 시스템이 바뀌면 교사가 바뀔 거라고 확신합니다.”

이씨는 “지켜보는 눈이 많다는 걸 알고 있다”고 했다. ‘전문적이고 친절한 교사’ ‘토론을 통한 민주적 결정’ ‘교수 학습 위주의 학교재정 운영’. 이씨의 학교가 내건 목표에 이웃 학교 교장들의 마음이 불편할 거라는 것도 짐작한다.

“주변에서 ‘어디 잘하나 한번 보자’ 그러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더 보여주고 싶습니다. 과거처럼 하지 않아도, 관행을 따르지 않아도 훨씬 잘할 수 있다는 걸 제가 보여줄 겁니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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