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세에 베를린 방송교향악단 종신 단원된 바수니스트 유성권

Է:2011-02-06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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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세에 베를린 방송교향악단 종신 단원된 바수니스트 유성권

‘젊은 음악가’ 바수니스트 유성권(24)씨는 지난해 이맘때 독일 베를린 방송교향악단의 바순 수석단원으로 입단했다. 그리고 1년이 채 안 된 그해 11월 이례적으로 종신 단원이 됐다. 베를린 방송교향악단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베를린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독일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교향악단이다.

“중저음의 바순, 찬송 연주에 제격이죠”

“한번은 교회에서 초청받아 독주회를 연 적이 있었습니다. 프로그램에 ‘유성권-바순’이라고 적혀 있는데, 사회자가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유성권 군과 바순 양의 연주를 듣겠습니다’. 겉으론 웃었지만, 내심 씁쓸했어요. 그만큼 바순을 모르신다는 거잖아요. 목관악기인 바순에 대해 설명하고, 중저음의 악기로 찬송을 연주하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보여줬습니다. 다들 마음까지 편안해진다며 행복해하셨습니다. 그때 다짐했지요. 나를 찾아만 주면 어디든 달려간다고요. 특히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 저의 달란트를 쓰겠다고요. 앞으론 교회에서 연주회도 자주 가질 겁니다.”

유씨는 서울 염창동 예수사랑교회 유춘원(56) 목사의 아들이다. 어렸을 때부터 악기 연주에 재능을 보였다. 초등학생 때는 새벽 6시면 일어나 등교하기 전 1시간 이상씩 예배실에서 피아노를 쳤다. 바이올린도 또래들보다 빨리 익혔고, 리코더도 잘 불었다. 그러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교회에서 바순 연주하는 모습을 처음 보게 됐다. 저음의 소리를 내는 바순에 매료된 유씨는 이때부터 바순 연주자의 꿈을 키웠다. 그러나 목회자 가정에서 음악을 공부한다는 게 만만치 않았다.

유 목사는 경기도 김포시에서 풍무제일교회를 개척해 안정적인 목회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노회에서 예수사랑교회(옛 염창제일교회)를 맡아 달라는 요청이 왔다. 그 교회는 담임목사가 미국으로 떠난 이후 후임자를 정하지 못하고 혼란을 겪고 있었다. “당시 어머니는 ‘남의 자식 살리자고 내 자식을 버리는 것’이라며 아버지를 만류하셨지만 이내 두 분은 회개하셨습니다. 그리고 문제의 교회로 부임하셨지요.” 유씨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일이다.

교회에 가보니 상황은 더 좋지 않았다. 남아 있는 성도는 10여명. 아버지를 담임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교회 재정도 모두 성도들이 관리했다. 그들은 10원 한 푼도 교회에 쓰지 않겠다고 결의까지 한 상태였다. 급기야 전기 요금이 밀려 교회에 전기가 끊기고, 물이 안 나온 적도 있었다.

유 사모는 학습지 교사를 하고 받는 월급으로 교회 재정을 감당했다. 혹시 사모가 돈 벌러 다닌다고 쓸데없는 소문이라도 날까봐 기도제목도 늘 ‘하나님 들키지 않게 해주세요’로 했다. 또 교회 일도 하고, 심방도 다니면서 늘 시간에 쫓기다 보니 ‘하나님 조금 늦어도 엄마들한테 혼나지 않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다.

어려움 속에서도 3년을 버티자 성도들이 점차 마음의 문을 열고 유 목사를 담임으로 인정했다. 성도 50명과 함께 교회도 새롭게 건축하고 이름도 ‘예수사랑교회’로 바꿨다. 지금은 300여명이 출석하는 안정적인 교회로 성장했다. 유선녀(52) 사모는 “사춘기의 아들이 모든 상황들을 옆에서 지켜보면서도 단 한번도 울거나 떼를 쓴 적이 없다”며 “그런 아들을 하나님께서 예쁘게 보시고 지금 이렇게 축복해주신 것 같다”고 말했다.

유씨는 “어렸을 때, 100원짜리 호떡이 먹고 싶어 사달라고 했더니 어머니는 ‘100원을 쓰려면 1000원을 헐어야 하고, 1000원을 쓰려면 1만원을 헐어야 한다. 1만원 헌금을 드려야 하기 때문에 안 된다’고 하신 말씀을 잊을 수 없다”며 “두 분이 헌신하는 마음으로 평생을 사셨듯 나 역시도 그런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겠다”고 소망을 전했다.

글=노희경 기자, 사진=신웅수 대학생 기자 hkr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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