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수지 (10) 내 삶을 밝힌 ‘나이팅게일 선서’ 촛불
나이팅게일 선서를 하던 날은 내 평생 잊지 못하는 날이다. 하얀 유니폼으로 정결하게 단장한 42명의 학생들이 내빈과 학부형들이 앉아 있는 강당 식장으로 입장했다. 나는 맨 앞에서 두 번째 줄에 앉았다. 찬송가 523장을 부르는 것으로 식이 시작됐다.
“나 형제를 늘 위해 진실하고, 날 보는 자 늘 위해 정결하고 담대하며 이 세상 환난 중에 나 용감히 늘 살게 하소서. 나 용감히 늘 살게 하소서∼.”
이 찬송을 부르는데 가사의 구절구절이 마음속 깊이 파고들었다. 환자를 보살피는 간호사로서 지녀야 할 성품과 취해야 할 자세에 대해 다시 한번 각오를 다지며 노래를 했다.
42명의 학생들이 두 줄로 서서 한 사람씩 이영복 학과장님과 보건간호학을 담당하신 손경춘 교수님으로부터 캡을 받아 쓴 뒤, 4학년 선배들로부터 촛불을 받아 단 아래로 내려왔다.
자신을 태우며 빛을 발하는 촛불을 받은 것은 크레미아전쟁 때 밤마다 병상의 군인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심어줬던 ‘등불을 든 여인’ 나이팅게일의 숭고한 삶을 본받자는 의미였다.
우리는 한목소리로 나이팅게일의 선서문을 외웠다.
“나는 나의 일생을 깨끗하게 살며 내 직무에 충실할 것을 하나님과 여기 모인 여러 사람들 앞에서 삼가 서약합니다.… 나는 성심으로 의사와 협력하며 내게 맡겨진 모든 사람의 안위를 위해 이 몸을 바치겠습니다.”
이 선서를 하는 내내 솟구치는 눈물을 참느라 혼이 났다. 주먹을 꼭 쥐고 다시 다짐했다.
‘나도 예수님처럼 낮고 천하고 병든 자를 간호하며 살리라.’
나는 실습시간마다 병실에만 들어가면 물 만난 고기같이 신나고 에너지가 넘쳤다. 환자 한 사람 한 사람마다 특성에 맞게 돌보는 것이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다. 또 아파하는 환자들을 보면 안타까운 생각에 정말 성심껏 도와줘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대병원 산부인과에서 실습을 할 때였다. 50세가 넘은 부부가 병원에서 임신을 확인했다. 결혼한 지 27년 만에 생긴 아기였으니 그 기쁨이 오죽했겠는가. 나도 함께 기뻐하면서 부인이 산전 진찰을 받으러 오면 나이 많은 산모가 시기별로 주의해야 할 점들을 미리 공부해서 가르쳐 줬다. 그 부부는 내 말을 열심히 잘 들어줬고, 병원에 오면 꼭 나를 찾았다.
드디어 산모가 아기를 낳으러 병원에 왔다. 나이가 많다보니 난산이었다. 몹시 힘들어하는 산모 옆을 떠나지 않고 간호했다. 다행히 큰 탈 없이 아들을 낳았는데 부인이 아기를 다룰 줄 몰랐다. 그래서 젖 먹이는 법을 가르치고, 유방 마사지도 해줬다. 퇴원 후 며칠이 지났는데 남편이 허겁지겁 찾아왔다.
“아이가 잠을 자지 않고 밤새 울어요.”
“아기 목욕을 주로 언제 시키세요?”
“낮에 시키는데요.”
“그럼 오늘부터 밤에 목욕을 시키세요.”
퇴근 후 나는 그 집에 가서 아기 목욕을 시켰다. 아기를 늦게 가진 부모의 마음이 와 닿아 어떡하든 돕고 싶었다.
한번은 나를 친동생처럼 대해주던 간호학과 선배의 언니가 출산을 위해 병원에 왔다. 초산이었다. 내가 옆에서 계속 등을 쓰다듬어주고 마시지를 해줬다. 그 언니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학생, 너무 고마워요. 만약 내가 딸을 낳으면 학생 이름을 따서 수지라고 지을 게요.”
그분은 정말 딸을 낳아서 이름을 수지로 지었다.
정리=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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