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수지 (7) 24시간을 28시간으로 쪼개 산 고교시절
중학교 2학년 때 온 가족이 여수에서 서울로 이사 왔다. 워낙 가난했던 때라 고등학교를 보내줄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낙심하고 있던 나를 본 큰고모가 학비를 대주셔서 명문인 숙명여고에 다니게 됐다.
입학 후 어느 날 영어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영어 웅변대회에 나가보는 게 어떻겠니?” “저는 목소리가 작아서 웅변대회에는 나갈 수 없어요.”“그렇다면 이야기 대회에 나가면 되지.”
선생님의 추천으로 코리아헤럴드에서 주최하는 영어 이야기 대회에 나가 입상을 했다. 그러자 다시 영어 웅변대회에 나가보라고 권하셨다. 나는 전국영어웅변대회에서 3등을 차지했고, 그때부터 ‘영어 잘하는 학생’으로 알려지게 됐다.
나는 공부뿐 아니라 과외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적십자반에 들어가서 붕대 감는 법 등을 배웠고 걸스카우트에 입단해 도전정신을 배웠다. 이밖에도 종교부, 합창부, 흥사단 등 활동을 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졸업할 때까지 어느 초등학교 학생 집에서 지내며 가정교사로 공부도 가르쳤다. 친구들은 나를 보고 “24시간을 28시간으로 사는 아이”라고 불렀다.
고3이 되던 해, 국립의료원 간호대학이 생겼다. 우리나라를 위해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세 나라가 합작으로 최신 의료시설을 갖춘 국립의료원을 설립해 줬는데, 그 병원 안에 생긴 학교였다. 나라에서 주는 장학금으로 공부할 수 있고, 의식주도 무료인 곳이었다.
“이 학교는 나를 위해서 생긴 곳이야.”
확신에 찬 나는 집에 갈 때마다 일부러 을지로6가에 있는 이 학교에 들르곤 했다. 추운 겨울인데도 기숙사에서 간호사들이 반팔을 입고 지내는 모습을 창 밖에서 지켜보며 부러워했다. 이 학교는 특차지원을 하는 곳이어서 다른 대학보다 빠른 11월에 원서를 접수했다. 아무 고민 없이 원서를 제출했다. 그런데 나흘 뒤, 담임선생님이 나를 부르더니 원서를 도로 돌려줬다.
“왜요?” “원서를 다시 잘 읽어봐.”
자세히 보니 입학 요건에 ‘대한민국의 건강한 만 18세 여성으로 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거나 졸업예정자’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내 생일이 12월이어서 만 18세가 안 된다는 말이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국립의료원 간호대학으로 뛰어갔다. 수위 아저씨가 들어가지 못하게 말렸지만 나는 원장실로 쳐들어가다시피 해서 원장을 만났다. 사정을 했지만 원장은 “미안하지만 규정이므로 18세가 아니면 받을 수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렇게 이 학교에 오고 싶으면 일 년 후에 다시 오도록 해요.”
그래도 내가 나가지 않고 울며 소리 지르고 난리를 치니까 원장이 쩔쩔매다 비서를 불렀다.
“이봐, 이 학생 좀 진정시켜봐.”
잠시 후 비서가 컵에 까만 물을 가져와 내게 먹으라고 내밀었다.
“이게 뭐예요?” “맛있는 거니까 그냥 먹어봐.”
그때 난생 처음으로 ‘콜라’라는 것을 마셔봤다. 콜라를 마시고 스스로를 진정시킨 뒤 터벅터벅 원장실을 나왔다. 학교에서 집이 있는 창신동까지는 한 정거장밖에 안 됐지만 가는 길이 그렇게 멀 수가 없었다. 너무 실망스럽고 슬퍼서 말을 하기도 힘들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좋을 길을 주시겠지’하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친구도 옆에서 위로를 해 줬다.
“수지야, 잘 될 거야. 지금껏 그랬듯이 하나님께서 다 준비해 놓으셨을 거야.”
정리=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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