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황주리] 자장면 이야기

Է:2010-10-12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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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황주리] 자장면 이야기

추석날 저녁, TV에서 영화 ‘김씨 표류기’를 보았다. 웬만한 영화는 다 보는 편이라, 어쩌다 놓쳐 보지 못한 영화라서 좋았다. 별 기대는 하지 않았던 그 영화는 생각보다 무척 재미있었다.



카드 빚이 천지인데다가 직장까지 잘린 김씨는 한강에 뛰어들어 자살을 시도한다. 하지만 실패하고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밤섬에 표류하게 된다. 그곳에서 고립된 원시인으로 살아가는 그는 어느 날 강물에 쓸려온 인스턴트 자장면 봉지를 발견한다. 봉지 안에는 면은 없고 자장 양념봉지가 들어 있었다. 그는 자장면을 먹고 싶은 일념으로 면을 만들기 위해 옥수수를 심는다. 그만큼 외딴섬에 표류한 그가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은 자장면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마 낯선 외지에서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이 자장면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처음 미국에 갔을 때도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이 자장면이었다. 80년대 말, 뉴욕 맨해튼의 한인 타운에 화교가 운영하는 중국음식점이 처음 생겼다. 나는 한 달에 한 번은 꼭 친구와 함께 그곳에 가서 자장면과 탕수육과 짬뽕을 시켜먹곤 했다. 지금은 뒤로 많이 밀려났지만 자장면은 그 때만해도 소박한 서민 가족들의 단골 외식 메뉴였다.

고등학교 시절, 유난히 보수적인 여고를 다니던 말썽꾸러기 우리 친구 몇 명은 수업 시간에 땡땡이를 치고 나와 학교 앞 중국집에서 자장면을 먹곤 했다. 그 잊을 수 없는 맛은 우리들의 억울한 청춘을 다 보상해주고도 남을 만큼 맛있었다. 하긴 그 나이에 맛없는 음식이 있었으랴.

요즘 아이들은 자장면 대신 피자를 먹는다. 하지만 피자도 그리 건강 음식은 아닐 것 같다. 영화 ‘김씨 표류기’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장면은 외출을 절대 하지 않는 은둔형 외톨이 소녀 하나가 망원경을 통해 밤섬에 혼자 살고 있는 김씨를 발견하고 갖가지 방법으로 그와 소통하는 장면들이다. 망원경을 통해 김씨가 인스턴트 자장면 봉지를 애지중지하는 것을 본 그녀는 그에게 자장면을 보낸다. 십만원이라는 거액을 받고 자장면 세 그릇을 외딴 밤섬까지 배달한 중국집 배달원은 김씨가 남긴 ‘자장면은 내게 희망이다’라는 메시지를 그녀에게 전해준다. 그렇다. 자장면은 춥고 배고프고 외로운 날, 우리 모두의 희망이며 낯선 세상과의 소통이 아니었을까. 왜냐하면 자장면은 맛있고 값이 쌀 뿐더러, 어린이날이나 생일날 같은 기념일에 부모님이 사주시던 축제의 음식이었으니까.

“희망이란 눈 뜨고 있는 꿈이다”라고 말한 건 아리스토텔레스였다. 무인도라면 몰라도 자장면은 더 이상 우리들의 희망이 아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자장면은 이제 그리 환영받지 못하는 음식이 됐다. 영화 속에서 그들은 자장면을 통해 소통하고 드디어 상봉한다. 이 세상에 자신과 소통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을 만나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를 보고 나자 추석이라 집에 먹을 것이 가득 쌓였는데도 나는 유독 자장면이 먹고 싶었다.

황주리(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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