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In&Out] 정년퇴임하는 한상진 서울대 교수

Է:2010-02-18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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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In&Out] 정년퇴임하는 한상진 서울대 교수

“시민적 자유권 후퇴… 사회적 협력 절실”

-요즘은 칼럼 안 쓰시죠?

“이젠 후배들이 해야지. 안 쓴 지 한참 됐어요. 그런데 요즘에는 신문 칼럼도 한쪽 의견만 대변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예전에는 양쪽 모두의 공감대를 이끌어 내는 힘이 있었는데….”

-정년퇴임을 앞둔 심정이 어떠세요?

“사실 홀가분해요. 이제야 내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경희대는 교수 정년을 연장한다고 하던데요.

“아이, 그만 해야지. 밑에 후배들이 얼마나 많은데.”

한상진(65)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바빴다. 퇴임 교수의 넉넉한 웃음을 기대했는데, 인터뷰도 제대로 못할 정도로 분주했다. 그가 말한 ‘내 일’은 벌써 시작되고 있었다. 30년을 몸담아온 서울대 근처에 ‘한상진사회이론연구소’를 연다. 22일이 정년퇴임식이고, 26일이 연구소 개소식이다.

직원들과 연구소 정비에 한창인 한 교수를 지난 16일 만났다.

-22일 고별강연 제목이 ‘80년대는 무엇을 남겼나’더군요. 80년대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80년대 이미지가 시위문화와 연관된 화염병 최루탄 등으로 고정됐는데, 사회학적으로 아주 의미심장한 구조적 변동이 일어난 시기이고, 그 뒤로도 영향력이 계속 이어지고 있어요. 80년대에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는데, 모든 것에 대한 반성이 이뤄진 ‘탈인습적’ 세대라고 할 수 있죠. 탈인습이라는 이 세대의 특성이 그동안 주로 정치적 차원에서 투영됐다면, 21세기엔 일상생활 영역에까지 반영되는 등 확산됐습니다. 근래 디지털세대가 등장했죠. 80년대 세대와 디지털세대는 차이가 크지만 그 배후엔 탈인습적 가치관이란 공통점이 있어요. 이런 게 제 강연의 테마입니다.”

-386세대를 여전히 높게 평가하는 듯합니다.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에 도전하는 건 옛날에도 있었어요. 그런데 386세대는 문제 제기 방식이 아주 체계적이고, 기존 가치관의 핵심을 의문시하고, 어떤 게 옳고 정당한지 통념에서 완전히 벗어나 새롭게 규정하려는 노력을 광범위하게 상당 기간에 걸쳐 했지요. 사회가 발전하려면 그 사회의 도덕적 능력이 증가해야 해요. 그리고 도덕적 능력의 핵심은 더불어 사는 것의 문제죠. 80년대 세대야말로 도덕적 자원이 풍부한 세대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디지털세대는 개성이 강하고 자기표현 잘하고 발랄하죠. 그것이 또 사회발전의 힘이 되겠죠. 그러나 사회적 약자 배려라든가 사회정의, 공동체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약한 게 사실이에요.”

-386세대는 이미 끝났다고 보는 이들도 많은 것 같은데요.

“추락했다거나 몰락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세대가 사라질 수도 없고. 386세대의 문제를 386정치인의 문제로 보는 경향이 있어요. 그런데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소수 정치인이 아니라 그 세대의 기저를 이루는 사고방식이나 행동이 훨씬 더 중요해요. 오늘의 시점에서 386세대를 어떻게 바라볼 거냐? 그들은 다른 세대에 비해 사회정의나 소외되고 힘없는 사람들에 대한 의식이 큽니다. 그런 세대가 중산층의 상당 부분을 구성하고, 광범위한 규모로 사회에 진입해 있기 때문에 한국사회가 굉장히 다이내믹한 거라고 봐요. 일본도 유럽도 밑에서부터 오는 다이내미즘은 다 사라졌잖아요.”

한 교수는 386세대를 떠나보내지 않았다. 정치적으로 급속하게 소비된 세대. 한 교수는 그 세대를 사회변화의 에너지라는 관점에서 복원한다. 사회변동과 사회운동을 연구해온 그는 ‘중민론(中民論)’ 제창자로 유명하다. 중산층 가운데서 사회적으로 각성된 계층을 중민이라고 명명했는데, 이 중민들이 80년대 이후 한국사회의 변화를 이끌어 왔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한 교수는 386세대가 중민의 핵심계층으로 성장했고, 이들이 앞으로도 한국에서 권위주의를 막아내고 사회통합을 이끌어 내는 힘이 될 거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대학 얘기를 여쭤보겠습니다. 80년대에 서울대 교수가 됐는데, 지난 30년간 대학의 변화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기업에서 채용을 해보니 대학에서 배운 게 쓸모가 없더라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그건 기업의 눈으로만 대학을 보는 거예요. 기업이 요구하는 지식과 기술을 대학이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 우리나라를 관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게 기업을 위해 존재하는 건 아니에요. 대학은 대학 나름대로 존재 이유가 있는 거죠. 80년대 학생들은 도덕적 윤리적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게 쓸모가 있는 거냐? 나는 이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봐요. 그런 집합적 고민이 결국은 한국사회를 발전시키는 자원이 됐고 앞으로도 역할을 할 겁니다. 이건 기업이 요구하는 지식과 전혀 다른, 한 사회의 발전에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라는 거죠.”

-요즘 대학생들을 보면서 걱정하는 입장이십니까?

“굉장히 발랄하고, 주입식 싫어하고, 지식에 대한 권위의식이 약하고, 그래요. 집단성도 훨씬 약하죠. 창의력을 발전시킬 기회를 많이 제공하면 굉장히 인상적으로 발전하리라 봅니다. 그런데 교육체계와 수업방식이 학생들의 필요에 부응할 만큼 탄력적으로 변하고 있느냐, 이게 의문입니다.”

-모든 교육문제의 근원으로 서울대를 지목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서울대가 개혁돼야 한다고 보십니까?

“떠나는 마당에 그런 얘기까지 하고 싶지는 않네요. 다른 기회에 얘기하도록 하죠.”

한상진사회이론연구소는 개소식과 함께 ‘민주주의와 비판문법’이라는 제목으로 세미나를 연다. 이 자리에서 한 교수는 ‘2010 민본지수’를 발표할 예정이다. 민본지수란 국민의 눈높이에서 한국 민주주의 수준을 평가해 보자는 취지로 한 교수가 창안한 개념. 절차민주주의, 시민적 자유권, 생존권 등 6개 분야 12개 항목을 뽑아낸 후 설문조사를 통해 지수화한다. 한 교수는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면서 일부를 공개했다.

“국민의 눈높이로 봤을 때, 중요성에 비해서 민주주의 실현 정도가 가장 낮은 영역이 어딘지 아세요? 놀랍게도, 시민적 자유권이에요. 시민적 자유권은 ‘언론·표현의 자유를 향유한다’ ‘집회·결사의 자유를 누린다’ 등과 같은 질문으로 구성돼 있는데, 국민들이 여기에 아주 낮은 점수를 준 거죠. 2007년도에도 똑같은 조사를 했는데, 그때와 비교하면 현격하게 하락했어요. 시민적 자유권에서는 이 정부가 후퇴하고 있다는 추론이 충분히 가능한 거죠.”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정책자문을 하셨습니다. 이번 정부에 조언을 하신다면?

“이 정부가 우리 뜻을 이해하고 대변한다는 느낌을 국민들이 갖도록 하는 게 굉장한 자산이 됩니다. 국민적 신뢰, 그 신뢰의 기반 위에서 나오는 협력, 그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거예요. 이미 우리 사회는 어떤 한 사람이 끌고 가는 사회가 아니에요. 사회적 협력이 절실합니다. 그게 있을 때 비로소 빈부격차 같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열립니다.”

-한상진사회이론연구소 홈페이지를 보니까 ‘소통’이 중요한 연구주제로 설정돼 있더군요.

“동아시아에 뿌리를 두는 소통사회이론을 발전시키자. 좀 거창하지만 이렇게 목표를 잡고 있습니다. 소통을 주제로 하는 건, 우선 현실사회에서 소통지수가 너무 낮고, 소통이 사회 발전의 핵심 변수이기 때문입니다. 서양에서도 현대문명의 근본적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가 소통이론으로 나옵니다. 위르겐 하버마스가 대표적이죠.”

-동아시아적 정체성에서 출발하는 사회이론을 강조한 점도 눈에 띕니다.

“언제까지 서구 이론 소개만 할 거냐, 우리 걸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죠. 서구와 끊임없이 대화하는 건 백 번 옳아요. 그런데 그 기반 위에 우리 걸 만들어야 하죠. 사실 대학도 기업 중심으로 가다 보니 사회이론이 설 자리가 없었어요. 이렇게 혼자 연구하는 게 더 편해요. 이제야 제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군요.”

한상진은

진보적 사회학자로 꼽히지만 보수 진영과도 대화가 되는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386세대 연구로 유명하고, 독일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를 국내에 소개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대통령자문 정책위원장과 한국정신문화연구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노무현 정부에서도 정책자문을 했다. 1970년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뒤 독일 빌레펠트대 연구교수 등을 거쳐 81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로 임용됐다. 전북 임실 출신.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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