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교수신문에서 뽑은 사자성어는 ‘변동불거(變動不居)’였다. 돌이켜 보면 2025년도 유난히 변동불거의 해였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영원한 진리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복음의 템플릿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심으로써 인류가 구원받는 가장 완전하고 유일한 불변의 진리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신조주의나 교조주의를 만들어냄으로써 복음 안에서도 대립각이 섰다. 이는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예컨대 우익·좌익 복음의 대립이다. 물론 성경 에도 우편향적, 좌편향적 부분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동전의 양면, 비행기의 두 날개와 같다. 그걸 구별해 대립시키는 순간 대립복음의 양상이 나타난다. 더 중요한 것은 우편향적 신앙인은 우파적 정치권력과, 좌편향적 신앙인은 진보적 정치권력과 연결되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일제 35년 지배 기간에 끝까지 신사참배를 하지 않거나, 어쩔 수 없이 했던 부류가 있었다. 신사참배를 십계명 중 제1계명을 어기는 것으로 여겨 끝까지 백절불굴의 신앙을 지켰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한국교회를 지킨다는 의미에서 안타깝게도 대부분 신사참배를 하게 됐다. 그러니 광복 후 집단적 회개가 필요했다. 그렇지만 회개 대신에 그들은 반공, 멸공이라는 포장을 쓰고 애국운동에 앞장섰다. 신사참배를 하지 않고 끝까지 신앙의 순결을 지킨 분들은 성경적 보수운동을 했지만, 반대로 사회적 복음을 주장한 부류도 있었다. 그들은 복음을 사회적·경제적 평등을 위한 투쟁, 노동자 해방, 인권운동, 성차별 등 사회 참여나 약자를 대변하는 논리와 수단으로 사용했다. 복음을 적절히 포장한 슬로건을 내걸었지만 자신들의 이념을 성취하기 위한 면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좌익복음보다는 우익복음 흐름의 양상이 더 뚜렷하다. 기독교가 극우화되는 현상이 바로 이런 흐름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극우적 신앙이 극우적 정치세력과 연결되는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템플릿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신조주의나 교조주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오죽하면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진리를 믿은 김교신 선생이 무교회주의를 주장했던 것처럼 오늘날 탈교회화 현상, 즉 교회의 이념 편향 현상을 보며 교회를 떠난 사람이 많은 것을 보면 가슴이 아프기 그지없다. 한국교회는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목회자들은 무엇을 위해 목회를 하는지, 그리고 교회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진심 어린 각성이 요구되는 때다.
2000년 교회 역사를 보면 쇠퇴기를 맞는 중에 특별한 각성운동이 일어나지 않으면 오히려 총체적 침체에 빠져 폭망(에픽 페일)하는 사례가 많았다. 동방정교회, 러시아정교회, 그리고 유럽 기독교가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각성운동이 일어날 때는 놀라운 부흥을 이뤘고, 교회는 진정한 생명과 화해의 진원지(에피센터·epicenter)가 됐다.
성탄절이 다가온다. 맨살의 아기로 오셨던 예수님은 교조주의와 전통에 찌든 바리새인, 서기관들, 그리고 유대 종교의 기득권층인 제사장들을 배격하고 책망하셨다. 오히려 창기와 세리들의 친구가 돼 주셨다. 그러면서도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요셉과 같은 권력 계층이었지만 겸손하게 진리를 탐구하려고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자상한 배려를 해 주었던가. 그런 그는 마침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과 사람을 화해시켰다. 교회가 진정으로 주님의 몸이라면 생명과 화해의 진원지가 돼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 한 해를 돌아보며 우리 모두가 각성해야 할 것은 각성하고 반성할 것은 반성함으로써 새해부터 주님의 몸된 교회를 생명과 구원, 화해와 평화의 진원지가 되도록 하자.
소강석 새에덴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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