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 사이에 통용되는 격언이 하나 있다. “취재원과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하라”는 말이다. 취재원과 너무 가까워선 사안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할 것이고, 너무 멀어선 그 입장에 공감하지 못해 본질을 파악하지 못할 것이니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올 한 해를 되돌아보며 정치권과의 관계에 있어 한국교회가 곱씹어 볼 대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한 해 그 어느 때보다 정치와 종교 간 결탁으로 시끄러웠다. 12·3비상계엄과 새 정부 출범을 계기로 한국교회가 이단으로 규정한 통일교와 신천지 같은 단체들의 정치권 유착 의혹이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다. 한국교회 역시 이에 대한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한 현실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들과 비밀회동이 있었느니, 누굴 따로 만나 기도를 해줬다느니 하는 의혹에 한국 사회는 정통교회와 이단의 차이를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던 중 지난 9월 미국 조지아주의 한 대기업 건설 현장에서 이민세관단속국(ICE)에 의해 많은 한국인 직원들이 체포·구금됐던 사건은 큰 의미로 다가왔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한미동맹을 강조하며 물밑 민간 외교 사절을 자처해왔다. 낙태, 동성애에 반대하는 등 기독교 가치 회복을 내세우며 다시금 권력을 잡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향해 국내 많은 개신교인은 지지를 보냈다. 하지만 앞선 사건으로 결국 동맹국을 배려하는 일보다는 자국의 이익이 우선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운영 철학을 명확히 확인했을 뿐이었다. 물론 해당 사건은 여러 이해관계가 얽힌 복합적인 정치·경제 문제이고, 한국 교계의 외교력이 영향을 미치기엔 한계가 있다지만, 많은 국내 개신교인들은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을 터다.
이 사건은 한 가지 교훈을 줬다. 정치 권력의 입맛은 언제든 변할 수 있다는 것. 이해관계에 따라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될 수 있는 유한하고 유동적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흔히 “정치는 생물이다”고 말한다. 이 비유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국가와 같은 정치체가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한 인간들의 계약에 따라 만들어진 공작품이라고 보는 해석과 인간의 선택을 초월해 거시적 역사의 힘에 이끌려 변하는, 살아있는 유기체로 이해하는 해석이다. 일견 기독교적 관점에선 후자의 해석이 더 가까워 보인다. 아니, 그렇게 믿어봄 직하다. 결국 만물을 주관하는 건 하나님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자가 유동적인 권력이 아닌 변치 않는 성경의 진리를 끝까지 붙잡아야 한다는 건 한층 더 명확해진다. 특히 교회 지도자라면 잘못된 길을 가는 위정자에게, 기득권 세력에 예언자(預言者)로서 훈계의 목소리를 전해야 한다. 지금처럼 권력자와 가까워질 궁리만 한다면, 필요할 때 교회가 전해야 할 하나님의 목소리를 낼 수 없다. 교회가 결코 멀어져선 안 되는, 곁에 둬야 할 존재는 하나님과 소외된 이웃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선하심이 이 땅에 이뤄지도록 적절한 견제를 통해 그 권세가 정당하게 사용되도록, 위정자들이 하나님 뜻을 분별하도록 지혜를 주라고 함께 기도하는 데 더 힘써야 한다. 위정자가 잘못된 길을 간다면 모든 만물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알아서 끊어내실 것이다. 하지만 지금 한국교회의 모습에는 하나님의 일하심보다 앞서서 일하려는 조급함이 깔려 있다. 현실정치와 동떨어져 방관하자는 것이 아니다. 정치에 깊숙이 관여해 하나님의 일하심보다 앞서는 우를 범하지 말자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일제강점기 3·1운동을 주도했고, 광복과 6·25전쟁 후 미 군정 출범과 함께 사회 재건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엔 순수했고, 진정한 의미의 하나님나라를 구했을 법했다. 하지만 점점 권력과 가까워진 탓일까. 수십 년이 흐른 지금 그 밀착은 자연스레 교회의 본질과 역할을 변질시켰다. 사랑은 빠지고 투쟁만 남았다. 약자를 보호하는 일에 집중하기보다는 정치권을 움직여 성경적 가치를 지켜내야 한다는 전투 본능만 남은 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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