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양의 낡은 초록색 교회 건물 1층. 신광교회(김문건 목사)가 운영하는 ‘징검다리 어린이 작은도서관’이 들어선 이 공간은 세대 간 돌봄이 교차하는 곳이다. 평일 오전 10시가 되면 15명 안팎의 마을 어르신이 연필을 쥐고 ‘문해력 교실’에 참여해 한글을 익힌다. 오후에 하교 시간이 되면 이 공간은 초등학생들의 놀이터이자 공부방으로 변모한다.
이곳은 16년 전 “아이들이 방과 후에 머물 곳이 부족하다”는 주민들의 요청에 따라 교회가 49.5㎡(15평) 공간을 개방하면서 시작됐다. 인근 시장 상인의 자녀들을 방과 후에 돌보다가 지역 행정복지센터를 통해 한부모가정이나 조손가정의 아이들을 찾아 돌봤다. 2년 전엔 “우리도 글을 배우고 싶다”며 자발적으로 찾아온 어르신들을 위해 도서관은 문을 더 활짝 열었다. 아이와 노인이 한 공간에서 서로의 온기를 나누는 풍경은 이제 마을의 일상이 됐다.
도서관 운영은 교회와 지역사회에서 함께하는 바자회와 축제 등으로 지속될 수 있었다. 개관 초기 도서관을 이용하며 자란 ‘도서관 키즈’들은 16년 지난 지금 대학생으로 자라나 후배들의 학습을 돕는 자원봉사자로 돌아왔다. 교인들은 바자회 수익금과 헌금을 통해 운영 재정을 뒷받침한다. 교회 구성원과 지역주민이 도서관을 매개로 자연스럽게 섞이며 생애 주기마다 서로를 돌보게 된 것이다.
김문건 목사는 2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우리 교회 도서관은 섬김을 실천하는 곳이지 전도를 하는 도구가 아니다. 주민들이 당장 필요로 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묻고 그것을 채우는 데 집중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지역 밀착형 활동은 교회의 문턱을 낮추는 결과로 이어졌다. 교회의 순수한 헌신은 기대하지 않았던 결과를 가져왔다. 현재 이 교회 출석 교인의 약 70%는 도서관 등 마을 활동을 통해 알게 된 주민이다.
돌봄이 사회적 과제로 떠오르면서 한국교회 성도들 사이에서도 마을 돌봄을 교회의 주요 역할로 인식하는 경향이 확인됐다. 실천신학대학원대 21세기교회연구소와 한국교회탐구센터 그리고 목회데이터연구소가 지난 9월 만 19세 이상 개신교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해 최근 발표한 공동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들은 한국교회의 위기 극복 방안으로 ‘예배·교육 회복’(47.6%)에 이어 ‘마을 돌봄’(31.9%)을 2순위로 꼽았다.
교회가 마을 돌봄 사역을 확대할 경우 ‘긍정적으로 기대한다’는 응답과 ‘우려되지만 긍정적이다’라는 응답을 합해 79.5%가 지지 의사를 보였다. 이는 돌봄이 교회의 사회적 신뢰 회복(45.3%)과 공동체성 강화(34.3%)에 기여한다는 생각이 바탕이다.
도시에서 지방으로 갈수록 열악한 사회적 환경이 과제로 지목된다. 농어촌 등 읍·면 지역 거주자는 대도시 거주자에 비해 생활환경이 ‘열악하다’고 응답한 비율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방 주민들의 돌봄 서비스 공백이 상대적으로 심하지만 실제 교회의 돌봄 사역 실천율은 대도시나 중소도시보다 읍·면 지역이 저조했다.
한국교회가 돌봄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선 정부 및 민간단체와의 협력도 필요하다. 이번 조사에서 교회가 마을 돌봄을 수행하는 방식에 대해 응답자의 75.9%는 교회가 단독으로 진행하기보다 지방자치단체나 NGO 등과 협력하는 방식을 선호한다고 답했다. 교회의 주된 돌봄 대상은 독거노인(63.1%)이나 빈곤층(37.3%) 등 취약계층에 집중돼 있고, 활동 내용도 반찬 배달 등 시혜적 성격(36.7%)이 다수인 상황이다.
교회가 이를 넘어서 지역사회의 다양한 자원을 연결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재영 실천신학대학원대 교수는 “돌봄은 일방적인 지원을 넘어 지역주민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 복지의 개념으로 확장될 필요가 있다”며 “교회가 직접 자원을 제공하는 공급자를 넘어 지역사회의 인적·물적 자원을 연결하는 플랫폼 역할을 감당할 때 지속 가능한 돌봄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