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스파게티 웨스턴에 대해

20세기 초반의 서부극은 클리셰가 가득했다. 화면에는 늘 모래바람이 불고, 회전초가 날아다녔다. 배경음은 당연하다는 듯 모래바람 소리와 말발굽 소리, 그리고 외로운 총잡이의 휘파람 소리. 관객은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악당과 주인공을 알아차릴 수 있는데, 악당은 정체를 감춰봤자 늘 검은 모자를, 주인공은 웬만해선 밝은 모자를 쓴 탓이다.

총잡이들은 동부에서 서부까지 황량한 사막을 몇 달에 걸쳐 이동한다. 한데, 좀 이상하다. 1869년 5월 10일자로 대륙 횡단철도가 완성됐기 때문이다. 그러니 1860년대까지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그렇다 쳐도, 1870년대부터 굳이 말을 타고 가는 건 억지 같다. 대체 왜 이럴까. 이유는 간단하다. 기차는 폼이 안 나니까! 무릇 총잡이의 삶에 끼어들 철덩이는 권총밖에 없는 법 아닌가. 아울러 서부극은 원주민을 야만인으로만 묘사했다. 그래서 움베르토 에코는 ‘서부극에서 원주민을 연기하는 법’이란 글로 이를 신랄히 비판했다. 몇 개만 소개한다. “접근할 때는 적이 잘 알게 코요테 울음소리를 낼 것” “한꺼번에 덤비지 말고 한 명씩 차례대로 덤빌 것” “만약 백인에게 이긴다면 그들의 총 따위엔 신경 쓰지 말고, 그들의 시계를 신기해하며 놀 것. 그들의 백인 친구들이 올 때까지!”

이리하여 미국 서부극의 인기는 1950년대 후반부터 시들해졌다. 그러자 1960년대 중반부터 이탈리아 서부극이 등장했다. 이 영화들은 미국의 개척신화를 조소했고, 선악 구도가 불분명했고, 미국 원주민을 새로운 시각으로 다뤘다. 그리고 예산 문제로 미국 대신 스페인의 사막에서 촬영했다. 그러자 미국 본토에서는 조소의 의미로 이를 ‘스파게티 웨스턴’이라고 불렀다. 참고로 일본에서는 그럴 수 없다며, 존경의 의미로 ‘마카로니 웨스턴’이라 불렀는데, 대체 스파게티와 마카로니 사이에 무슨 대단한 차이가 있는지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 스파게티 웨스턴의 연출 방식은 전 세계를 들끓게 했다. 러시아에서는 이를 본떠 ‘레드 웨스턴’(동부극)을 만들었다. 주로 시골에 낙오된 군인이 홀로 중앙아시아 마적들과 싸우는데, 군인답게 기관총을 시원하게 난사한다(이게 동부극의 스케일이다!). 이 방식으로 동유럽 각국이 레드 웨스턴을 만들었고, 동독이 가장 많이 만들었다. 그러자 서독이 경쟁하듯 서부극을 만들었는데, 이를 ‘자우어크라우트 웨스턴’이라 불렸다. 아시다시피 ‘자우어크라우트’는 독일인이 소시지와 함께 먹는 배추절임, 즉 독일식 김치다. 그럼, 스파게티 웨스턴의 촬영 무대를 빌려줬던 스페인은? 당연히 빠질 수 없다. 그들도 야심차게 서부극을 제작했으니, 이는 당연하다는 듯 ‘파에야 웨스턴’으로 불렸다. 인도의 서부극은? ‘커리 웨스턴’. 호주의 서부극은? ‘미트파이 웨스턴’(다른 표현이 있는데, ‘캥거루 웨스턴’이라 딱히 멋있진 않다). 이쯤 되면 한국에서 만든 걸 ‘김치 웨스턴’이 아니라 ‘만주 웨스턴’이라 명명한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할 판국이다(한데 찾아보니 ‘고추장 웨스턴’이란 별명이 있단다. 아뿔싸!). 일본의 서부극은 ‘라멘 웨스턴’ 혹은 ‘스키야키 웨스턴’으로 불리는데, 그중 ‘스키야키 웨스턴 장고’란 영화에서는 배우들이 모두 일본인인데도 영어로 말한다(물론 일본식 영어로). 그리고 사무라이의 후예답게 무려 칼을 들고 총잡이와 대결한다. 그게 어떻게 되냐고? 가능하다. 그는 날아오는 총알을 칼로 베기 때문이다! 근접거리에서는 적이 휘두르는 긴 칼을 굳이 권총으로 막는다. 왜 총을 안 쏘느냐고? 다시 말하자면, 그건 폼이 안 나니까.

여하튼 오늘날에는 ‘스파게티 웨스턴’이 정통 웨스턴보다 나은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래서 생각한다. 중요한 건 이름이 아니라 본질이라고. 그리고 첫출발할 때의 문제점을 얼마나 개선했는지 살펴보는 것이라고. 그럼에도, 고추장 웨스턴은 좀 아닌 것 같은데, 청국장 웨스턴이 좀 나을까요? 어렵네요, 거참.

최민석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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