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거부조차 할 수 없는 존재인가요 왜!” 강렬한 기타 리프 위로 붉은 십자가와 조명이 사선으로 쏟아진다.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명곡 ‘헤븐 온 데어 마인즈(Heaven on Their Minds)’. 무대 중앙에 선 유다 역의 배우가 격렬하게 절규한다. 작품 연출에서는 유다가 군중 속 예수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는 장면이 묘사됐다.
프로젝터로 빛을 통해 무대를 감싸는 프로젝션 맵핑. 무대 벽면에는 우주 공간을 연상시키는 보랏빛 파동과 기독교적 상징이 빠르게 뒤섞였다. 무대 아래서는 드럼과 전기 기타가 폭발적인 음향을 뿜어냈다.
가죽 재킷 차림의 몽니 보컬 김신의는 흔들리는 유다의 내면을 절규하듯 토해냈다. 숨 막히는 긴장감에 객석에선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잠시 후 그는 하얀 의상으로 갈아입고 이번에는 예수님의 독백 ‘겟세마네(Gethsemane)’를 불렀다. 십자가 아래 홀로 선 예수님의 고뇌가 생생히 객석에 전달되는 순간이었다.
“아버지, 제가 원치 않아도 해야 한다면…” 가사 일부가 화면 위로 흘렀고 붉은 십자가에는 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무대 장치는 단순했지만, 거대한 화면 전체를 활용한 영상과 라이브 밴드 연주의 결합은 예배당이란 엄숙한 공간을 거대한 록 콘서트장처럼 바꿔놓았다. 스포트라이트가 십자가를 스치고 정면으로 꽂히자 객석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모든 넘버를 실제 밴드가 라이브로 연주해 공연 내내 높은 긴장감을 유지했다.
뮤지컬 선율이 울려 퍼진 곳은 서울 여의도의 한 교회였다. 여의도침례교회(국명호 목사)는 지난 25일 본당에서 ‘제4회 한강문화축제’를 개최했다. 관객들은 종교시설이라는 공간을 잊은 듯 공연에 몰입했다.
올해 축제는 뮤지컬 갈라 콘서트 형식으로 진행됐다. 김신의를 비롯해 테너 정의근, 소프라노 박현주 등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아티스트들이 무대에 올랐다. 배우 김대우가 사회를 봤고 연극 무대에서 활약하는 배우 안지후 최정훈 등도 열연을 펼쳤다.
이날 하이라이트는 한국 관객에게 가장 익숙한 뮤지컬 곡이었다. ‘지킬 앤드 하이드’의 ‘지금 이 순간’이 선보였다. 극적인 고음에 도달하자 관객들은 기다렸다는 듯 박수와 함께 폭발적인 환호를 보냈다. 10초 이상 이어진 환호는 그 장면이 왜 여전히 국민 뮤지컬 곡인지 증명했다. 이어 ‘웨스트사이드스토리’ ‘오페라의 유령’ ‘레미제라블’ 등 친숙한 뮤지컬 속 명곡들이 이어졌다.
축제는 여의도침례교회가 창립 50주년이던 2022년, 코로나19로 지친 시민을 위로하고자 처음 기획했다. 1·2회는 서울시 후원으로, 3회에서는 자체 제작한 창작 음악극 ‘기쁜 소식의 노래’를 선보였다. 4년 동안 클래식, 록, 창작극, 뮤지컬 등으로 장르를 확장하며 교회 울타리를 넘어선 문화 선교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관객의 반응은 뜨거웠다. 안승희(55) 여의도침례교회 집사는 “교회 안에만 머물지 않고 지역 주민과 어울릴 수 있어 자랑스럽다”고 소감을 전했다. 친구를 따라 교회를 처음 찾았다는 임성이(42)씨는 “겟세마네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종교시설에서 듣는 예수의 외침이 색다르게 다가왔다”고 말했다. 뮤지컬 애호가라는 지역 주민 차윤지(43)씨는 “음향과 무대 모두 수준급이었다. 이런 행사가 계속 열렸으면 좋겠다”고 호평했다.
축제의 저력은 성악가·연주자·연출가 등 전문 예술인들이 섬기는 문화예술선교회에 있다. 교회와 지역 주민 사이의 단절된 다리를 예술이 다시 놓는 방식이다. 규모 확대보다 지속 가능한 플랫폼, 청년 예술인의 무대, 세대 간 연결을 키워드로 제시하는 것도 특징이다. 교회는 앞으로도 교회와 세상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는 문화 선교의 실험장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방침이다.
국명호 목사는 “교회는 도시의 이웃”이라며 “공공의 자리에서 시민과 관계를 맺는 사역을 지속하겠다”고 말했다.
손동준 기자 sd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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