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스크랜턴 내한 140주년, 우리가 죽겠습니다

Է:2025-10-25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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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조(가운데) 상동교회 목사가 최근 일본 고베 카이세이병원(옛 고베외국인병원)에서 역사 담당자, 의료진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일본 고베 롯코산 외국인 묘지에 있는 윌리엄 스크랜턴 선교사의 묘. 이 목사 제공

일본 고베는 내게 늘 내면의 성지다. 상동교회 담임으로서 생각해보면 긴 역사와 기념행사, 유물과 기록을 지키는 일에 마음과 시간을 쏟으며 나는 종종 기념 안에 머물렀다. 윌리엄 B 스크랜턴(1856~1922) 파송 140주년을 맞아 미국 오하이오 연회에 참석하던 어느 날이었다.

“기념만 하지 말고, 상동에서 선교사님의 자리에 있는 너는 무얼 하고 있니.” 그 물음이 영혼을 흔들었다. 스크랜턴 선교사님 무덤 앞에 선다면 혼란한 내면이 잡힐 것 같아 일본 오사카행 비행기에 올랐다. 마음은 무거웠지만 공항에 서는 순간 이상하게도 새 일의 설렘이 밀려왔다.

비가 갠 고베의 아침 롯코산 외국인 묘지의 작은 십자가 앞에 섰다. 묘는 생각보다 작고 소박했다. 그러나 그 돌 위 이름은 또렷했다. 스크랜턴 선교사는 조선의 의료선교를 열고, 한국 감리교의 초석을 놓은 분이다. 그는 친일 정책에 저항하다 교단 중심에서 밀려났다. 동료들마저 등을 돌리자 조용히 고베로 옮겨와 생애를 마쳤다. 사위의 자살과 긴 투병까지 겹친 그의 마지막은 모두에게 잊혔다.

그 작은 봉분 앞에서 마음 깊은 곳에 한 음성이 번졌다. “내가 너를 잊지 않았다.” 성경의 역사는 종종 세상의 주변부로 밀려난 이름들이 하나님의 손바닥에서 중심이 돼 새 역사를 연다. “기념비의 교회를 넘어, 어떻게 지금 역사를 써 내려갈 것인가.” 이 질문을 품고 다음 날 스크랜턴이 마지막으로 섬겼던 고베 외국인 병원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자료를 모으고 사람들을 만나며 추적한 끝에 그 작은 병원이 전쟁과 화재를 지나 오늘날 고베에서 가장 큰 종합병원 카이세이(海星)병원으로 이어졌음을 확인했다. 북적이는 로비 한복판에 서니 성경 한 구절이 가슴을 꿰뚫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요 12:24)

아, 스크랜턴은 잊힌 것이 아니라 심어진 것이었다. 심김은 보이지 않고 잊힌 채 마지막으로 죽음을 통과한다. 바로 그 자리에서 생명이 터져 나와 새로운 역사가 쓰이는 것이다. 이사야 49장의 말씀이 내 마음에 이렇게 새겨졌다. “내가 너를 손바닥에 새겼고…” 하나님의 사랑은 기록이 아니라 새김이다. 돌과 금속에 파듯이 자신의 살에 파놓은 언약의 사랑. 새김의 자리가 손등이 아니라 손바닥이라는 것도 놀랍다. 만지고, 품고, 내어주는 자리. 창조의 손, 만나를 나누던 손, 병든 자를 어루만지던 손,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힌 손은 고통의 흔적이 아니라 우리 이름이 새겨진 언약의 표지다.

조선이 그를 잊었을지라도 그는 조선을 하나님의 손에 올려 새겼다. 스크랜턴 선교사는 고베의 항구에서 조선인 노동자의 곁을 지키며 멀리서도 언약의 시선으로 조선을 바라봤다. 고베 작은 병실에서 시작된 씨앗은 세월을 건너 사람을 살리는 큰 나무가 됐다. 스크랜턴이 140년 전 청년을 길렀듯 교회는 오늘 교회 밖 청소년, 일자리가 없어 삶을 놓아야 하는 수많은 청년을 위해 심어지는 한 밀알이 돼야 한다. 그래야 사람의 마음에 복음이 새겨진다. 예수님은 한 알의 밀알이 돼 돌아가셨지만 그 못 자국은 언약과 새 역사의 표지다. 스크랜턴 내한 140주년을 기념하는 서울연회는 오는 26일 ‘우리가 죽겠습니다’를 주제로 서울 중랑구 금란교회에서 모여 대기도회를 연다.

복음의 역사는 언제나 역설의 펜에 의해 쓰여 왔다. 한 알의 밀알로 죽고 심어져 세상에서 잊힌 자가 된 바로 그 자리에서 새 역사로 쓰인다. 롯코산의 고요한 바람 속에서 나는 오래도록 손바닥을 들여다 봤다. 그 손바닥 안에서 스크랜턴 선교사와 하나님나라가 한 이야기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 손은 여전히 우리를 향해 펼쳐져 있다.

이제는 기념만 하지 말고 정말로 죽자. 한 번의 기도 모임과 결심으로 끝내지 말고, 각 가정과 일터와 골목에서 우리가 먼저 씨앗이 되자. 숨은 섬김 하나, 묵묵한 돌봄 하나, 포기하지 않는 중보기도 하나가 흙 속에서 마침내 싹을 틔울 것이다. 그날 다음세대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 교회요? 늘 조용히 씨앗을 심던 교회였어요. 그래서 동네와 도시가 달라졌어요.”

이성조 상동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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