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미세균형을 유지하라

통합종양학을 다루는 의사로서 90년대에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수술이냐 기도원이냐’였다. 21세기 들어서는 ‘항암치료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로 변했다. 요즈음은 ‘어떤 치료조합을 할 것인가’가 가장 많은 질문이다. 한번은 미국 LA에서 폐암 3기 상태의 여성과 상담하게 되었다. 수술 이후 표준항암치료를 하면서 표적치료도 하라는 의료진의 치료 방향이 정해진 상황에서 가족들은 매우 불안해했고 그들도 의견이 나뉘었다.

자녀들은 표준항암치료를 무조건 지지했고 아내의 체력 고갈을 우려한 남편은 기도 끝에 반대하는 상황에 자문을 요청했다. 의사결정 하나에 생명이 좌우되는 상황이었다. 결국 부작용이 없는 표적치료는 하되 표준항암치료는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재발을 막기 위한 면역치료와 정밀 영양 처방을 통해 몸을 회복시키는 방향이었는데 결과가 좋았고 지금도 그 환우는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필자는 오랫동안 영향력 있는 크리스천 리더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단순한 열정이 아니라 의사결정 능력, 즉 거룩한 분별력이라는 생각을 해왔다.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최고 리더의 경우 공동체의 크기가 클수록 의사결정의 파급 효과는 엄청나다. 누구나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싶어하지만 실제 상황에서 ‘어떻게 결정을 내리는가’의 문제는 중차대하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거룩한 미세균형(Holy Microbalance·HM)’이다.

우리는 복합성(Complexity)의 시대를 살고 있다. 한 가지 의사결정을 하는 데 수십 가지 요소가 얽혀 있다. 많은 사람은 이 상황에서 단순화와 과잉 분석이라는 두 가지 잘못된 반응을 보인다. 따라서 복잡한 현실을 피하지 않으면서 이를 꿰뚫고 나오는 지혜가 절실하다. 그래서 만들어진 게 ‘인지적 균형’이라는 도구인데, 이는 지·정·의의 균형을 유지하며 결론을 내리는 방식이다.

사실 심리학이 말하는 인지적 일관성은 내면의 불안을 줄이기 위한 정신적 안정이다. 그러나 HM은 그 차원을 넘어선다. 그것은 성경적 원리와 성령의 인도, 지성의 분별, 감정의 조율, 공동체의 검증이 통합된 균형 잡힌 사고 능력이며, 하나님과 동행하며 현실을 해석하고 선택해 창조적인 열매를 맺는 도구이다. HM은 거룩한 성령 지휘자의 손이며, 모든 악장의 리듬을 살려내 하나님의 창조를 완성하는 보이지 않는 숨결이다. 거룩한 미세균형 없는 하나님 크기의 비전은 성취될 수 없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롬 12:2)는 말씀에서 마음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지성 인식구조 사고체계’를 의미한다. 인식구조가 거룩하게 변화될 때, 즉 성령으로 새로워진 지성으로 비로소 하나님의 뜻을 식별할 수 있다는 뜻이다. 로마서 12장 1~2절은 세 축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헌신(거룩성, Holy), 변화(지성적 재조정, Cognitive), 분별(HM을 통한 결정)이다.

“너희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롬 12:1)는 말씀에서 HM의 첫 번째 요소는 ‘거룩’인데 이는 단지 도덕적 순결이 아니라, 자신의 전 존재를 하나님께 맞추는 중심의 정렬이다. HM은 세속적 패턴의 사고 틀을 벗어버리고 말씀과 성령의 조명으로 재조정된 시스템을 말한다. 지성과 감성과 영성과 공동체성이 순종으로 재정렬되는 총체적 의사 결정의 재건축 과정이다. 이 분별은 단순히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검증해 하나님의 뜻으로 확정 짓는 지속적 과정을 뜻한다.

필자는 여러 영역을 오가며 일해왔기에 그 중요성을 매 순간 깨닫고 있다. 킹덤 임팩트를 줄 수 있는 중요한 결정, 하나님 영광과 직결되는 사항일 경우 더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빌리온 소울 하비스트(BSH)와 같은 하나님 크기의 비전을 이루려면 반드시 스케일과 디테일, 즉 비전과 실행에 세밀한 균형이 함께 가야 한다. 믿음만으로는 부족하고 감정만으로는 위험하며 이성만으로는 건조하다. 따라서 크리스천 리더에게는 성령의 인도와 지성적 분별이 만나는 균형점이 필요하다. 그래서 미세균형이 중요하다.


필자는 그 원리를 2011년 55세 나이에 도전했던 고비사막 마라톤에서 체험했다. 죽음의 마라톤이라 불리는 그 대회에, 한 번도 마라톤을 해본 적이 없는 몸으로 뛰어들었다. 낮엔 섭씨 57도의 열기와 밤이면 영하 10도로 떨어지는 최고의 일교차, 끝없는 산과 모래 언덕, 무거운 장비와 고산의 공기 등 환경적 요인을 놓고 ‘이 길이 하나님의 뜻인가, 아니면 나의 자기증명인가’를 분별해야 했다. 또 초보자로서 전무한 경험, 두려움과 포기하고 싶은 마음, 기대감과 도전정신, 중년의 몸과 정신의 부담 등의 요인도 무시할 수 없었지만 가족의 지지와 공동체의 중보기도는 큰 격려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경험자들의 체험담을 연구하고 초강도 훈련을 통해 몸을 만들어 가야 하는 이성적 판단도 중요했다. 수없이 이어지는 스케줄 속에서 참가 두 달 전부터 배낭에 책을 가득 넣어 달리면서 1시간 30분간 출근을 했다. 계속 달리고 달리며 청계산 대둔산 지리산 등지에 도전했다. 그래도 내면의 갈등은 어쩔 수 없었다. 이럴 때 시편 23편과 이사야 40장 구절 등이 힘이 됐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갑자기 이런 하나님의 마음이 떠올랐다. ‘다른 참석자들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가지만 너는 나의 임재를 증명하기 위해 가라.’

이 한 마디는 모든 상황을 압도하는 권위가 있었다. 중보자들에게 부탁했더니 한 분도 가지 말라고 만류하는 사람이 없었고 오히려 꼭 다녀오라고 권면했다. 그때 깨달은 것은 하나님의 뜻은 감정적 충동이 아니라 모든 요소가 미세하게 균형을 이루며 조화롭게 결합할 때 성령의 인도하심이 선명해진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명확하지 않으면 그때까지 기도하며 기다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것이 HM의 핵심 원리이다. 더 신기한 일은 이렇게 주님의 뜻에 맞춘 결정은 그 이후 실행 과정에서 놀라운 인도하심과 기름 부으심, 창조적 열매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역풍을 순풍으로 바꾸시는 은혜를 경험했다. 이 불가능한 도전은 주님의 기적적 인도하심과 경이로운 성령행전으로 마무리되었고 ‘킹덤 레이스’라는 책으로 결실을 맺었다.


이 통합적 균형의 원리는 성경 속에서 계속 반복된다. 사도 바울의 마게도냐 환상은 HM의 교과서이다. 사도 바울은 환경의 막힘(길이 닫힘)과 내면의 열망, 초자연적 환상, 이성적 판단, 공동체적 합의를 고려해 결론에 이르렀다.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행 16 : 10) 말씀에서 ‘인정’은 영어로 결론을 내리다(conclude), 헬라어로 ‘모든 요소를 함께 결합하여 상황을 판단하고 결정하다’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뜻은 직통 계시가 아니라 공동체적 판단과 감정 조율, 성령 감화, 현실 분석이 결합한 총체적 의사결정의 결과였다는 점이다.

이 결정의 열매로 개척한 빌립보 교회는 마게도냐 선교의 교두보였고 이를 통해 유럽 선교의 문을 열게 되었다. 결국 사도 바울을 실은 배는 유럽의 미래를 실은 배가 된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에 공명된 의사결정은 하나님의 창조적 경륜을 이루는 도구가 됐다. 성경은 놀랍게도 성령과 지혜의 충만(행 6:3)을 리더십의 조건으로 내세운다.

이는 영성 일변도의 사고를 가진 사역자로서는 충격적인 내용이다. 이는 리더의 의사결정 중요성 즉 HM의 중요성을 염두에 둔 것이다. 문제는 각 요소의 변화 여부이다. 감정은 성령의 불로 정화되고 이성은 말씀의 빛으로 밝아지고, 영성은 지혜의 통찰로 확장되며 공동체와 환경은 하나님 부르심의 맥락으로 재해석돼야 한다. 그 변화된 과정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뜻, 즉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한 뜻을 분별하는 삶의 근육’을 기르게 된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유명한 말이 있지만 성경을 묵상해 보니 하나님도 디테일을 중시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BSH 비전은 요한복음(14:12)과 디모데전서(2:4)에 근거한 하나님 크기의 비전이다. 경이로운 것은 불가능해 보이는 미션이 오히려 일상의 미세한 균형 속에서 완성된다는 것이다. 작은 결정 하나, 잠깐 드리는 짧은 기도가, 성령 하나님이 순간순간 주시는 아이디어로 세상을 바꾸는 씨앗이 된다. 이것이 HM의 묘미이다.

이에 대한 성경의 첫 모델은 다니엘이다. 다니엘은 바벨론과 페르시아라는 이방 제국의 궁정에서 활동하며 HM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유대인으로서 거룩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이방 문화 속에서 왕들의 신뢰를 얻는 탁월한 지혜를 겸비했다. 그 과정에서 생채식의 선택과 하루 세 번의 기도 습관 등 삶의 디테일을 유지함으로써 내면의 HM을 지켜냈다.

두 번째 모델인 느헤미야다. 그는 황폐해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사명을 수행하면서 영적 통찰과 정밀한 현실 분석을 완벽하게 결합한 리더십을 발휘했다. 그는 먼저 금식하며 기도하는 영성을 갖추었으며 이에 그치지 않고 왕 앞에서 지혜로운 언어를 선택하고 밤에 성을 ‘둘러보고 철저히 준비하는’ 주도면밀한 계획을 병행했다. 느헤미야와 다니엘 모두 ‘미세균형 없는 하나님 크기의 비전은 없다’는 진리를 삶으로 입증했다. 모세와 다윗, 요셉과 에스더, 진젠도르프와 죠지 뮬러, 그리고 빌 브라이트와 로렌 커닝햄까지 수많은 인물들이 HM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적 경륜에 동역했다.

현실적으로 각 세대와 문화는 서로 다른 사고 구조를 가진다. Z세대는 감정 중심, 밀레니얼세대는 의미 추구, 베이비붐세대는 사명 중심성으로 각각 다르다. 따라서 HM은 일률적 체계가 아니라 시대 세대 문화 기질별 적용이 가능한 균형의 기술이다. 성령은 기질을 초월해 일하시며 약점을 아시면서도 그 속에서 역사하신다. 이 거룩한 미세균형은 단지 개인의 평안을 위한 심리적 조화가 아니라 역사의 변곡점에서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리더십의 지혜이다. HM은 주님의 다시 오심이 임박한 시대에 거룩한 제사장인 성도들이 갖춰야 영적 분별력의 도구다.

황성주 KWMA 회장·사랑의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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