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주민·교회·의료협동조합이 함께하는 ‘마을 돌봄망’ 구축

맑은 가을볕이 비치던 지난 15일 오후 평균 연령 85세 안팎의 어르신 20여명이 모인 인천 부평구 부평2동경로당에 모처럼 활기가 돌았다. 인천평화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인천평화의사협) 노인역량강화사업부가 ‘행복한 길동무 노인 일자리 프로그램’을 열면서다. 이 작은 경로당에서 이뤄지는 돌봄은 지역 주민과 교회, 의료협동조합이 함께 엮어가는 마을 공동체 협력의 모습이다.


이날 연두색 조끼를 맞춰 입은 인천평화의사협 조합원들이 경로당 문을 열고 들어서자 어르신들은 기다렸다는 듯 손을 내밀었다. 프로그램은 코스모스 색종이 액자를 만드는 활동과 건강 체조로 이어졌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꼭 바깥에 나오셔서 햇볕을 쐬세요.” 한 조합원이 색종이를 나누며 말문을 열었다. 손이 느린 어르신들 곁에 다가가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 아주 잘하셨어요”라고 다독이며 함께 작업을 도왔다.

“좌로 우로, 위로 뒤로, 앞으로 뒤로 흔들고 흔들고.” 체조 시간이 되자 모두가 구호에 맞춰 몸을 움직였다. 음악이 흐르고 조합원들은 “엄마, 이렇게요. 웃으면서요”라며 손을 들어 올렸다. 단순한 동작에도 어르신들 표정은 금세 환해졌다. 프로그램이 끝날 즈음 조합에서 직접 만든 손뜨개 수세미가 선물로 전해졌다.

부평2동경로당은 돌봄이 절실한 어르신들에게 쉼과 온기를 전하는 공간이다. 가족과 함께 사는 어르신은 10%도 채 되지 않고 기초생활수급자나 의료급여 대상자도 적지 않다. 7년째 경로당을 맡아온 박금숙(78) 회장은 “매일 60명 정도가 이곳에서 점심을 해결한다”며 “몸보다 마음이 먼저 늙는 분들에게 누군가 찾아와 손을 잡아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고 말했다.

참석자 중 최연장자인 임옥순(91)씨는 “이렇게 웃고 춤추니 내가 젊어진 것 같아 고마워”라며 환하게 웃었다. 2년째 경로당을 찾아오는 한형선(83)씨도 “집에 혼자 있으면 말할 데도 없고 심심한데, 딸 같은 선생님들이 와줘서 하루가 금방 간다”고 했다.


인천평화의사협의 노인 일자리 사업은 지자체 지원 아래 60세 이상 활동가들이 경로당과 가정을 찾아가 건강관리와 정서 지원을 제공하는 통합돌봄 모델이다. 색종이 접기 같은 생활 프로그램부터 자가 건강 관리 지원, 폐의약품 점검까지 맡으며, 2인 1조로 마을 곳곳을 누빈다.

조합원들은 단순 봉사자가 아니라 어르신 눈높이에 맞춰 활동하는 ‘현장 전문가’다. 그 현장에는 지역 교회 성도들도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인천 늘푸른교회(송영옥 목사)에 출석하는 곽혜은(62) 팀장은 “나가기 전 항상 기도로 시작한다”며 “손을 잡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열린다”고 했다. 그는 “3년째 활동하면서 교회에 나오기 시작한 어르신들도 생겼다”며 “활동하며 종교색을 드러내지 않지만 마음에 걸리는 분들을 위해 계속 기도한다”고 덧붙였다.

인천 산곡제일교회(이용범 목사) 집사인 박영애(62)씨도 “봉사가 아니라 ‘섬김’이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다”며 “내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이 자리에 서 있다고 생각하면 어르신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고 말했다. “돌봄과 복지 현장이 신앙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 자체가 큰 은혜”라고 덧붙였다.


인천평화의사협 활동의 중심에는 ‘서로 돌봄의 관계망을 만든다’는 분명한 비전이 있다. 의료협동조합이지만 진료보다 앞서 ‘건강한 마을 네트워크’를 핵심 가치로 삼는다. 노은주(51) 노인 일자리 담당자는 “돌봄을 받는 사람과 돌보는 사람을 구분하지 않고, 주민 모두가 돌봄의 주체가 되는 구조를 지향한다”고 설명했다.

인천평화의사협의 시작은 1989년 기독청년의료인회가 설립한 ‘평화의원’에서 비롯됐다. 당시 젊은 의료인 40여명은 ‘시간과 능력의 십일조를 드린다’는 고백과 함께 봉급을 모아 6700만원의 기금을 조성했고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저소득층과 노동자를 직접 찾아 나섰다. 1996년 협동조합으로 전환한 이후에는 ‘신뢰할 수 있는 의료’ ‘주민 참여 공동체’ ‘서로 돌보고 함께 돌보는 삶’을 핵심 가치로 내걸고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평화의원 초대회장이었던 임종한 인하대 의과대 교수는 “기도로 시작된 초기 연합의 결단이 지금 협동조합의 정신”이라며 “교회가 의료협동조합 같은 플랫폼과 연결되면 봉사가 방향을 찾고 마을 돌봄의 실제 주체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문 인력이 많은 교회가 지역과 연대할 때, 마을 공동체 회복의 축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합원 3800명 규모에 이르는 인천평화의사협은 주민 출자로 운영되는 1차 의료기관(평화의원·평화한의원·평화치과)을 기반으로 검진센터, 만성질환 관리 교육, 건강 소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가 팀을 이뤄 재택의료센터 방문 진료는 물론 주·야간 보호, 방문 요양, 연탄·이불 나눔 등 생활 돌봄까지 아우르는 ‘마을 돌봄망’을 확장해가고 있다. 한혜영(44) 인천평화의사협 상무이사는 “교회 성도들은 이미 ‘이웃에 대한 관심’이라는 신앙의 언어를 갖고 있다”며 “조합원과 신앙 공동체 활동가의 경계가 자연스럽게 흐려질 때 건강한 마을 네트워크가 완성된다”고 말했다.

인천=김수연 기자 pro111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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