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에 자신이 붙자 철인 3종 경기에 도전하고 싶었다. 수영 사이클 달리기를 잇는 경기. 세 종목 합산으로 순위가 매겨진다. 마라톤은 자신 있었고, 자전거도 익숙했다. 문제는 수영이었다. 물놀이라곤 분지골 개울에서 멱감던 게 전부였다. 마침 회사 복지관에 수영장이 생겼다. 퇴근 후 매일 물에 들어갔다. 처음엔 20m도 못 갔지만 포기하지 않자 1.5㎞를 완주할 수 있게 됐다. 물속은 낯설었지만 숨을 고르고 나면 신기하게 평안이 찾아왔다.
2000년 설악국제트라이애슬론 대회가 첫 출전이었다. 2시간16분34초로 30대 부문 3위를 차지하며 철인 무대에 이름을 올렸다. 이듬해 전남 목포 대회에서는 철인 3종 중 가장 긴 거리를 자랑하는 아이언맨 코스에 도전했다. 수영 3.8㎞, 사이클 180㎞, 마라톤 42㎞를 완주해야 했다. 하루 전 대회장을 찾았을 때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가 깊은 어둠처럼 느껴졌다. ‘내일 저 바다를 건널 수 있을까.’ 마음속에서 묵직한 기도가 흘러나왔다.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하는 가운데 한참 동안 눈을 감고 파도 소리를 들었다. 그 바다를 지나야만 나 자신도 건널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음 날 오전 7시, 출발 신호와 함께 600명의 선수가 동시에 바다로 뛰어들었다. 물살이 사람들을 뒤엉키게 했고, 파도는 가슴을 때렸다. 나는 코스 가장자리로 비켜섰다. 살아서 나오는 것이 우선이었다. 1시간28분만에 수영을 마치고 바다에서 걸어 나오며 알았다. 살아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이미 완주였다.
사이클에서는 허벅지 경련이 찾아왔다. 자전거에서 내리지 못한 채 그대로 멈춰 섰다. 천천히 숨을 고르고 페달을 다시 밟았다. 몸이 조금씩 풀리자 다시 달릴 수 있었다. 마라톤 구간에 들어서자 응원 피켓이 눈에 들어왔다. “집 나서면 개고생.” 웃음이 났다. ‘그래, 즐거운 마음으로 개고생하자.’ 기록은 10시간이 넘었지만, 40대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완벽하지 않았지만, 완전한 하루였다.
하지만 수영의 벽은 여전히 높았다. 진주까지 주 2회 찾아가 수영 코치를 만났다. 퇴근 후 1시간을 달려가 밤늦게 돌아왔다. 지치고 피곤했지만 목표가 있는 고단함은 행복이었다. 그렇게 12년을 연습했다.
2012년 강원도 삼척에서 열린 철인 3종 대회. 동해는 성난 짐승 같았다. 파도는 끊임없이 포효했고, 바람은 귀를 때렸다. 전날 밤 나는 바다를 오래 바라봤다. 대회 당일 출발 10분 전, 물에 몸을 담그자 차가운 물살이 폐 속까지 파고들었다. 하지만 두려움이 아닌 믿음이 일어났다. ‘한 바퀴만 해보자.’ 그렇게 시작한 첫 회전에서, 나는 파도와 싸우지 않고 파도에 몸을 실었다. 몸의 긴장이 풀리자 호흡이 고르고 시야가 트였다. 1㎞를 돌아 백사장에 올라섰을 때 두려움은 이미 물러가 있었다.
그날 나는 종합 2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기록보다 중요한 걸 얻었다. 고통 속에서도 나를 일으키는 힘이 있었다. 그건 믿음이었다. 바다를 건너는 일은 결국 내 안의 두려움을 건너는 일이었다. 믿음이 체력보다 앞서 있었다. 나는 그 믿음으로 파도를 향해 나아간다. 그 믿음이 단지 정신의 힘이 아니라 내 안에 숨 쉬는 하나님의 호흡이다. 오늘도 또 하나의 파도를 향해, 나는 그분이 부르시는 방향으로 달려간다.
정리=손동준 기자 sd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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