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에서는 여전히 드라마, 영화 등 대중문화를 경계하는 분위기가 존재한다. 특히 고난주간엔 ‘미디어 금식’이라는 이름으로 대중문화 소비를 멈추고 예수의 고난에 동참하자는 운동이 전개되기도 한다. 과잉 정보와 자극 속에서 잠시 멈춤을 권장하는 흐름엔 유익이 있을 수 있다.
저자는 인식의 전환을 제안한다. “기독교적인 이야기와 비기독교적인 이야기라는 대립 구도를 넘어설”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런 금식 대신 미식을 추천한다. 미디어 홍수의 시대에 맞춰 ‘넷플릭스 영화’를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감상하고, 복음의 이야기와 공명하는 지점을 찾아내는 방식이다. 겉으로 기독교를 찬양한다고 해서 반드시 훌륭한 작품은 아니며, 반대로 비판적 시선을 담았다고 해서 무조건 피할 이유도 없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고교 시절 목회하는 아버지를 따라 미국에 이민 간 그는 자신을 ‘신학, 문화 덕후(마니아)’로 소개한다. 현재 미국 뉴욕에서 약사로 일하며, 기독교 유튜브 채널 ‘다마스커스TV’를 통해 5만6000여명 구독자에게 기독교 콘텐츠도 전하고 있다. 디즈니와 일본 애니메이션부터 영화 드라마 웹툰 소설까지 그의 문화 덕질 리스트는 방대하다.
그가 사랑하는 또 다른 이야기의 축은 성경이다. 그는 성경이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해석할 틀이 되어 주는 중심 이야기”이며 “모든 작품들을 더 깊고 아름답게 감상할 수 있도록 기준이 되는 이야기”라고 단언한다.
책은 ‘기독교가 바라보는 인간’ ‘세상의 악과 신의 침묵’ ‘우리들의 일그러진 종교’ ‘기독교가 그리는 비전’이라는 네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대중문화 콘텐츠를 어떻게 복음적 시선으로 음미하면 좋을지 보여준다.
영화 ‘기생충’은 인간의 이중성과 부조리를 성경의 인간관으로 풀어낸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신의 형상을 지닌 존엄한 존재이지만 동시에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이 영화에 고스란히 재현된다. “그저 억울한 현실을 돌파해 보고자 시작했던 작은 부도덕한 선택들”로 인해 결국 살인이라는 파국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인 기택(송강호 분)을 통해 드러난다. 박 사장(이선균 분) 역시 예수의 ‘부자와 거지 나사로’ 비유와 겹친다. 직접적인 해를 끼치지 않았지만 철저히 외면했던 무관심이 심판의 이유가 된다는 점에서다.
저자는 두 사람을 “부조리한 세계의 희생자”로 규정하며 십자가 사건을 통한 기독교의 역설을 되짚는다. 인류의 모든 문제를 어깨에 짊어진 신의 아들이 대중의 폭력과 무관심 속에서 죽임을 당하는 모습은 부조리의 핵심이다. 복음의 역설은 “세상에서 가장 부조리해 보이는 이 십자가 위에서, 바로 그러한 부조리를 해결할 실마리가 제시됐다는데”에 있다. 저자는 그러면서 “복음의 이야기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소망이 되어준다고 믿는다”고 덧붙인다.
‘소년 만화’로 통칭하는 일본 애니메이션 ‘원피스’와 ‘슬램덩크’도 신앙적 성찰의 소재가 될 수 있다. 저자는 꿈이 사라진 시대일수록 ‘노력 우정 승리’라는 핵심 가치를 품은 이 장르가 더 절실하다고 말한다. 타인의 인생 하이라이트만 모아놓은 SNS를 매일 들여다보는 것보단 “차라리 (소년 만화가 표방하는) 순진한 낙관주의에 빠지는 편이 낫다. 아니, 비교 자체를 할 수가 없을 정도로 더 좋다”는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신념들은 이러한 서사를 통해 배울 때 가장 확실하고 깊이 각인된다”는 것도 저자가 미디어 미식을 말하는 이유다. 슬램덩크의 마지막 경기에서 강백호와 서태웅이 하이파이브를 나누는 장면에선 “원수를 사랑하라”는 복음의 메시지를 떠올릴 수 있다. 저자는 말한다. “북산(고등학교)이 농구를 사랑하며 그것에 인생을 걸었을 때 결국 서로를 받아들이게 되었듯이, 교회도 비본질을 내려놓고 복음에만 집중할 때 자연스럽게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책엔 “다양한 콘텐츠를 분별력 있게 소화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의 세계관은 더욱 성숙해질 것”이라는 믿음과 “무엇보다 가장 위대한 이야기가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그 모든 이야기 안에서 어떻게 공명하고 계신지 발견하게 될 것”이라는 열망이 담겨 있다. 이것이 “(문화 콘텐츠) 홍수를 피하지 않고 오히려 생명수로 변화시키는 지혜”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해줄 것이라는 희망을 걸어본다.
신은정 기자 se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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