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방암 수술을 받은 뒤 수면장애와 근육통을 호소하던 A씨는 지난해 3월 서울 마포구 한방병원에 입원했다. A씨는 퇴원할 때 비스쿰알붐과 싸이모신알파1을 성분으로 한 면역증강제를 25일분씩 총 825만원어치 처방받았다. 경기도 성남의 한 의료기관은 2020년 단 하루 입원한 위암 4기 환자 B씨에게 동일한 성분의 면역증강제 두 종류를 각각 145일분, 97일분을 처방했다. 약값은 2700만원에 달했다.
요양·한방병원을 중심으로 싸이모신알파1과 비스쿰알붐, 이뮤노시아닌 등 이른바 3종 면역증강제를 과잉 처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면역증강제는 항암 치료와 백신 접종 시 면역 증진을 위해 사용되는 의약품이다. 최근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이 이에 대해 ‘미권고 치료’로 판단했다. 반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품목 허가를 갱신해준 것으로 확인됐다. 치료 효과가 불분명한 비급여 의약품에 대한 부처 간 시각이 엇갈리면서 환자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9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식약처는 지난해와 올해 싸이모신알파1 성분의 면역증강제 29개 가운데 7개(24.1%)에 대해 품목 허가를 갱신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NECA는 지난 7월 의료기술재평가에서 싸이모신알파1을 포함한 3종 면역증강제 모두에 대해 “치료 효과가 명확히 입증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두 기관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면역증강제는 무분별하게 처방·판매되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서명옥 국민의힘 의원이 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9월 한 달 비급여 의약품 지출 상위 항목에서 3종 면역증강제는 전체 진료비(364억원)의 52.8%(192억원)를 차지했다. 지난해 전체로 치면 수천억원어치가 팔린 셈이다.
의료 현장에선 약효를 두고 혼선이 불거지고 있다. 김성주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장은 “약효를 직접 확인할 수 없는데 평가마저 애매모호하니 애먼 환자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치료가 절박한 암 환자는 효과가 불분명한 치료일지언정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받으려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의약품 품목 허가·취소를 총괄하는 식약처가 과잉 비급여 의약품 규제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비판도 나온다.
복지부는 비급여관리정책협의체를 통해 비급여 퇴출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의약품 품목 허가·취소를 관장하는 식약처는 해당 협의체에 정부위원으로 참여하지 않고 있다. 또 의료기술재평가가 시행규칙에 근거하지만 의약품 허가·취소는 별도 상위법인 약사법에 근거한다. 이 때문에 비급여 의약품 퇴출과 관련한 법체계가 느슨하다는 지적도 있다.
조민우 서울아산병원 예방의학과 교수는 “의약품이 한번 시장에 들어오면 급여든 비급여든 활개치도록 내버려둬선 안 된다”며 “임상 현장에서 축적되는 실제 효과성을 검토하고, 계속 사용 여부를 결정하는 제도적 단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정헌 기자 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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