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나무와 말총이 빚은 선율이 갓으로 피어난다.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세계적 흥행을 거두면서 K 콘텐츠를 향한 관심이 폭발하고 있다. 한국 전통의복과 장신구도 주목받는데, 그 중심에 ‘갓’이 있다. 양반 계층이 쓰던 모자가 한국 고유의 멋과 정신을 담은 ‘상징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지난 13일에 찾은 경기도 광명시의 한 작업실. 문을 열자마자 대나무 삶는 냄새와 말총 특유의 향이 코끝을 자극했다. 벽에는 세월이 가득 묻은 도구들이 줄지어 걸려 있었다. 박창영(83) 장인이 바닥에 앉아 정성스럽게 대나무를 쪼갰다. 그는 국가 무형유산 갓일 보유자다. 전수자인 아들 박형박(51)씨까지 5대에 걸쳐 갓 만드는 전통을 잇고 있다.

대나무를 삶아 쪼개고 문질러 머리카락 굵기로 만들어 엮은 뒤 명주실이나 대나무 올을 하나하나 얹는 과정은 정성과 인내 없이 불가능하다. 갓 하나를 완성하기까지 적어도 두어 달은 걸린다고 한다. “갓은 쓰는 사람의 품격을 드러냅니다. 한땀 한땀 제대로 만들지 않으면 금세 무너져요.” 박 장인은 갓을 ‘정신을 곧게 세우는 도구’라고 설명했다.


박 장인 부자는 ‘같은 원칙’을 공유한다. 전통을 지키되 시대와 호흡해야 한다는 것. 아버지는 기본기에 집중하며 전통 갓을 재현하는 데 힘쓰고, 아들은 해외 전시와 디자이너 협업으로 갓의 쓰임새를 확장하고 있다. 곡선을 살리면서 실용성을 더한 이들 부자의 작품은 젊은 세대 눈길을 끌었고, 지난해 9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열린 ‘호모 파베르’ 전시에 참여해 기자상을 받았다. 다음 달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박람회장에도 작품을 전시하고 각국 정상을 만난다.

화려함만 있는 건 아니다. 전통을 잇는 길은 순탄하지 않다. 긴 제작 시간, 재료 수급의 어려움, 좁은 판매 시장은 늘 어깨를 짓누른다. 형박씨는 “갓은 과거의 유물이 아닙니다. 지금도 살아 있는 문화예요. 우리가 하는 일은 그것을 세상과 다시 연결하는 겁니다”라고 말했다.
광명=글·사진 김지훈 기자 da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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