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초 두 가정이 결혼식을 올렸다. 평범한 결혼처럼 보였지만, 그 안에는 특별한 이야기가 있다. 보육원에서 자란 이들이 교회의 따뜻한 돌봄 속에서 사회에 나온 뒤 꾸린 가정이기 때문이다. 이들을 돌본 건 성남 샘물교회 안에 자리 잡은 ‘선한울타리(대표 최상규 장로)’다. 선한울타리는 보육원 등 아동 양육시설에서 지내다 보호가 종료된 자립준비청년들이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함께하며 삶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최근 선한울타리 사무실에서 만난 최상규(사진) 장로는 미소를 가득 머금은 얼굴로, 자립준비청년 현실을 이야기하며 교회가 이들에게 관심 가져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해마다 2000여명이 사회로 나오지만, 누군가의 돌봄이 없다면 자칫 ‘위태로운 청년’으로 내몰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선한울타리는 2015년 보육원을 퇴소한 청년 2명과 샘물교회 성도들이 멘티와 멘토로 연결되면서 시작됐다. 최 장로는 당시 선한울타리 문을 열게 된 동력이 안타까움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보호 아동의 추후 자립을 돕기 위한 ‘디딤씨앗통장’이라는 제도가 있다. 후원자가 매달 최대 3만원을 입금하면 국가의 매칭펀드로 기금을 만드는 것”이라면서 “하지만 초창기에 이 통장을 가진 아이들은 고작 10% 남짓에 불과했고 아동 복지를 지자체가 담당하면서 예산 부족 문제로 지원 수준도 천차만별이었다”고 말했다. 현재는 후원금이 5만원으로 상향 조정돼 매달 최대 10만원 적립이 가능하다. 디딤씨앗통장에 적립된 기금은 또 다른 어려움을 낳기도 했다. 일주일 용돈으로 3만원 정도 받던 아이들이 수백만원에 달하는 목돈을 손에 쥐게 되면서 생기는 문제들이었다.
선한울타리는 이런 고민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아이들을 어른들과 연결했다. 모든 활동은 멘토링에서 출발한다. 해를 거듭하면서 이 사역에 공감하는 교회들이 늘어나 현재는 샘물교회를 포함해 교회 28곳이 함께하고 있다. 그동안 샘물교회가 98명의 자립을 지원했고 동역 교회까지 더하면 250여명이 교회를 통해 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했다.
최 장로는 “멘토링 사역이 선한울타리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다”며 “아이들에게 ‘사회적 가족’을 만들어 주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오랜 기간 어른에게 불신이 쌓인 아이들이 사랑과 진심을 통해 마음을 열고 회복하고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고 덧붙였다.
멘토링이 마음의 보금자리를 제공했다면 숙소는 청년들을 위한 일상의 쉼터가 됐다. 선한울타리가 마련한 쉼터는 현재 7곳으로, 임대료와 공과금을 모두 선한울타리가 부담한다. 갈 곳 없는 청년들에게 제공되는 이 공간은 자립을 위한 실험실과도 같다. 선한울타리는 청년들이 자연스럽게 장을 보고 요리하는 일상을 익혀갈 수 있도록 돕는다.
돌봄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신앙 훈련과 취업 교육, 대학 진학과 교육비 지원을 비롯해 은행 업무, 법률 자문, 심리 상담, 의료 지원까지 제공하며 청년들의 자립 여정을 함께한다.
역설적으로 연락이 끊겼던 가족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부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보육원에 맡겨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이혼, 학대 등을 이유로 자녀를 시설에 보내고 연락을 끊는 경우가 있는데, 주변에선 부모의 존재 여부를 파악하기 쉽지 않다고 한다.
문제는 청년들이 보육원을 퇴소하면서 자립정착금이나 디딤씨앗통장에 적립된 목돈을 노리면서 의도적으로 다시 접근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는 점이다. 선한울타리는 이런 불상사를 예방하기 위해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자립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청년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방안을 고민하는 건 아직 남은 숙제다. 일부 청년들이 좋지 않을 일에 연루되거나 경제관념이 부족한 상태에서 목돈을 한꺼번에 사용해 빈털터리가 되는 사례도 종종 발생한다. 선한울타리는 정책을 입안하고 보완할 때 현장 실무자들이 가진 경험과 노하우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 장로는 “청년들이 자립을 연습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일시적인 현금 지원만 늘리면 뜻하지 않은 위험이 생길 가능성만 커진다”고 지적했다.
선한울타리가 품고 있는 바람은 더 많은 청년이 교회의 돌봄 안에서 희망을 찾는 것이다. 매년 보호 종료 후 사회에 나오는 2000여명의 청년 중 10%만이라도 한국교회가 돌볼 수 있길 기도하고 있다. 더 나아가 교회와 보육원이 긴밀하게 연결돼 성인이 된 아이들의 미래를 복음 안에서 함께 책임지는 꿈을 꾸고 있다.
전국 보육원은 240개에 달하고 교회는 5만개를 웃돈다.
최 장로는 “100개 교회만 헌신한다면 많은 청년의 삶이 바뀔 수 있다”면서 “교회와 교인들이 홀로 된 아이들을 돕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달라”고 호소했다.
성남=글·사진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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