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국내 한 대학병원의 새로운 의료 시스템이 공개됐다. 유전체와 병리, 영상과 임상 데이터를 한데 모아 인공지능(AI)이 분석하고, 그 결과를 의료진이 바로 진료에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든 구조다. 암 환자에게 어떤 약이 잘 들지, 어떤 치료가 부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큰지까지 예측해준다. 정밀의료가 미래의 기술이 아닌 오늘날의 현실임을 보여준다.
모두에게 똑같은 약을 쓰던 시대는 이제 끝났다. 같은 병이라도 누구에게 비롯됐는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에 따라 그 양상이 달라진다. 어떤 사람은 유전자가 문제고, 또 다른 사람은 수면 부족이나 만성 스트레스가 병을 키운다. 이제 의학은 병이 아닌 사람을 중심에 둔다. 이것이 바로 ‘맞춤형 의학’이다.
의학은 이제 ‘병에 어떻게 대응할까’가 아닌 ‘이 사람에게 어떻게 접근할까’를 먼저 묻는다. 과거엔 진단이 같으면 치료도 같아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은 A와 B가 같은 암에 걸렸다고 해도 유전 정보와 장내 미생물, 식습관과 회복력, 운동 방식까지 다 다르므로 치료도 달라야 한다는 것을 당연시한다.
맞춤형 의학은 최신 기술의 집합체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속의 철학이다.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고 가장 적절한 시기에 그에게 딱 맞는 방식으로 도와주는 일. 이것이 맞춤형 의학의 본질이다. 유전자뿐 아니라 하루 루틴을 들여다보는 이유다. 한 사람의 수면 습관과 식사 패턴, 활동량과 실시간 생체 반응까지 통합해서 본다. 사람이란 복합적 존재를 온전히 이해하려는 시도다.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기술적 기반은 크게 일곱 가지로 볼 수 있다. ‘유전체·단백질체·대사체를 포함한 오믹스 분석’과 ‘바이오마커를 활용한 질병 위험도 예측’ ‘AI와 빅데이터를 활용한 건강 예측과 조기 진단’과 ‘생활습관과 환경 요인을 반영한 통합 평가’ ‘진단과 치료가 동시에 이뤄지는 테라노스틱스(Theranostics)’와 ‘약물 유전체학을 통한 부작용 예측과 약물 최적화’ ‘환자 스스로 건강의 주체가 되는 참여형 의료’다.
이 모든 게 맞물릴 때 비로소 진짜 맞춤형 의료가 시작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맞춤형 의학은 병이 생긴 뒤에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예 병이 생기지 않게 미리 그 길목을 막는 방식이다.
한 사람의 유전자와 장내 미생물, 수면 주기와 스트레스 반응을 분석하면 그 사람이 혈당이 쉽게 오르는 체질인지나 특정 약물에 민감한지, 어떤 음식이 염증을 유발하는지를 미리 알 수 있다. 이 결과에 따라 식단을 바꾸고 수면의 질을 높이며 때로는 약물 전략도 다시 짠다. 단순한 건강 관리가 아닌 병의 방향을 바꾸고 발생 시점을 늦추며 삶의 질을 완전히 새롭게 설계하는 일에 가깝다. 진료 중심이 질병에서 개인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다.
이런 흐름이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미국 배우 앤젤리나 졸리는 BRCA1 유전자 변이를 사전에 진단받고 유방암 예방을 위한 선택적 수술을 결단했다. 그의 사례는 맞춤형 의학이 개인의 삶의 방향과 결정 자체를 바꾸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한국도 국가적 전략으로 이 흐름을 받아들이고 있다. 1만명 이상의 유전체 데이터를 해독했고 수백만명의 건강 데이터를 통합했다. AI 기반 진단 시스템과 정밀 유전자 검사는 이미 병원에서 쓰이고 있고 일부는 건강보험도 적용된다. 2030년까지 암뿐 아니라 고혈압과 당뇨, 치매와 우울증, 골다공증 같은 만성질환과 정신건강 분야까지 정밀의료가 확대된다. 건강보험 체계도 점차 맞춤형 진단과 예방 중심으로 재편하고 있다.
의학은 이제 건강을 설계하고 미래를 관리하는 과학으로 발달하고 있다. 누구나 병에 걸릴 수 있다. 하지만 회복 속도나 치료 반응, 후유증 차이는 사람마다 극명하다. 이 차이를 가능성으로 바꾸는 힘, 이것이 맞춤형 의학이다. 더 똑똑한 의학이 아니라, 더 나를 닮은 의학인 셈이다. 이러한 변화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선한목자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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