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6편은 초대교회가 가장 소중히 붙들었던 말씀 가운데 하나입니다. 베드로는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을 설명하면서 이 시편을 인용했습니다. 그는 요엘서 예언이 성취됐음을 선포하고 시편 16편을 들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언했습니다. 바울 역시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복음을 전할 때도 이 시편을 인용하며 주님의 부활을 논증했습니다. 초대교회가 그 시작부터 이 말씀을 붙들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오늘 본문을 더 깊이 묵상하도록 이끕니다.
시편 22편이 십자가의 고통을 예언했다면 시편 16편은 그리스도의 기쁨을 노래합니다.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3절)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시던 주님께서 교회를 향해 이렇게 고백하십니다. 인간의 사랑은 아무리 깊어도 ‘나의 모든 기쁨’을 한 대상에게 둘 수 없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전능하므로 이 고백이 진실입니다. 주님은 성도들에게 자신의 모든 즐거움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신학교 시절, 이 말씀 앞에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모든 즐거움을 나에게 두셨다니!’ 이 깨달음으로 제 인생의 전과 후가 달랐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62장에서도 교회를 ‘헵시바’(나의 기쁨이 그에게 있다)라 부르시며, 신랑이 신부를 기뻐하듯 성도를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만 강조하기 쉬우나, 성경은 먼저 하나님의 고백을 들려줍니다. “나의 즐거움이 너희에게 있다.” 이 사실을 붙드는 것이 신앙의 기초입니다.
이 고백은 삶의 현장에서 실감 나게 다가옵니다. 제 아이가 어릴 적 희소병으로 항암치료를 받았을 때, 아비로서 단 한 번의 주사조차 대신 맞아줄 수 없는 무력함 앞에서 큰 슬픔을 경험했습니다. 그때 문득 ‘예수님은 참 행복하셨겠다.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 실제로 대신 죽어주실 수 있었으니…’라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인간 부모의 사랑은 아무리 뜨거워도 무력할 수밖에 없지만 예수님은 다릅니다. 실제로 대신하시고 실제로 죽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기쁨’입니다. 성도를 향한 자발적인 기쁨의 십자가였습니다. 본문은 이런 기쁨을 노래합니다.(26, 29절)
십자가는 하나님의 전능한 사랑이 계시가 된 자리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랑이 인간적인 한계 속에 있다면 십자가 사랑은 끝까지 책임지는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부터 준비하신 사랑이 십자가 안에서 드러났고, 신자들은 더는 의심하지 않고 주님께 돌아왔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나의 모든 즐거움이 너희에게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고백을 붙드는 순간 흔들리던 마음은 다시 굳게 서고, 교회는 생명력을 회복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처럼 교회 안에서 지고의 기쁨을 발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앙의 길은 때로 고난과 눈물로 가득하지만 십자가를 지신 주님의 발걸음 안에는 기쁨이 있습니다. 우리도 그 기쁨을 누리며 교회를 사랑하고 섬기며, 주님의 몸 된 공동체 안에서 참된 행복을 맛봐야 합니다.
시편은 말합니다.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11절)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기쁨이며 성도의 기쁨입니다. 주님의 기쁨이 곧 우리 기쁨이 되는 은혜를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안상혁 총장 (합동신학대학원대)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는 경기도 수원 영통구에 있습니다. 1980년 11월 11일 개교한 합동신학교의 설립 이념을 이어받아, 개혁주의 신학에 근거한 바른 신학, 바른 교회, 바른 생활을 교육 이념으로, 교회가 필요로 하는 교역자와 지도자를 양성함을 설립 목적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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