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정부가 어제 국무회의에서 123대 국정과제를 확정했다. 5대 국정 목표 아래 정치·경제·사회·외교안보 전반을 아우르는 과제가 담겼다. 개헌과 권력기관 개혁, 전시작전권 전환, 남북 기본협정 추진, 지방 균형 발전, 인공지능(AI) 3대 강국 도약과 신산업 육성까지 두루 망라됐다. 윤석열정부 탄핵을 통해 갑자기 등장한 정부의 국정 로드맵인 만큼 국민 화합을 다지고, AI 강국으로 가는 토대가 되기를 기대한다.
아쉬운 건 이를 뒷받침할 재원 조달 방안이 다. 지난달 국정기획위원회는 5년간 210조원이 필요하다며 세제 개편과 지출 개선으로 116조원을 조달하겠다고 제시했다. 그러나 실현 가능성이 의문시돼 이번엔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기대했는데 보이지 않는다. 이는 신접살림을 위해 가구와 가전제품, 새집 등 쇼핑목록을 작성해놓고 “앞으로 돈 벌어 갚으면 된다”는 신혼부부의 태도와 다르지 않다.
더욱이 이번 국정과제는 핵심 역량에 집중하기보다는 좋다는 것을 모조리 끌어다 모은 듯한 인상을 준다. 한정된 재정을 고려하지 않으면 공수표로 끝날 위험이 크다. 요란하게 출범한 문재인정부의 뉴딜 펀드가 수익률 부진과 불투명성으로 용두사미에 그친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 이름만 바꾼 듯한 국민성장펀드를 100조원에서 더 확대한다는 구상도 몸집만 키운 ‘관제 펀드’로 흐르지 않도록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가뜩이나 세수 펑크가 불어나는 상황에서 재정 부실 우려는 미국과의 관세 협상과 맞물려 더욱 커지고 있다. 한국은 미국에 약속한 3500억 달러 투자금의 관리·회수 방안을 놓고 진통을 겪고 있다. 당장 거대 대외 투자금 마련과 운용 로드맵이 부실한 상황에서 210조원의 국정과제 비용 조달 방안이 빠져 있다면 어불성설이다. 결국, 일만 벌여놓고 그 부담을 후임 정부와 미래 세대에 떠넘길 가능성이 크다.
최근 프랑스는 무분별한 지출과 복지 확대에 치중하다 재정적자가 불어나 신용등급 강등까지 당했다. 한국도 재정 건전성에 대한 경고음을 외면한 채 재원 계획이 빠진 포퓰리즘성 국정과제를 밀어붙인다면 머잖아 같은 위기를 맞을 수 있다. 국정과제는 ‘쇼핑목록’이 아니다. 실행 가능한 ‘재정계획’이 반드시 포함돼야 국정이 살아난다. 국무조정실은 국민 요구와 정책 여건 변화를 반영해 국정과제 이행 계획을 보완하겠다고 밝혔지만, 그 모든 전제는 튼실한 재정 기반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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