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를 떠나 애틀랜타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라탄 내 마음은 불안과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눈을 감으면 후회와 수치심이 밀려 들어와 나를 짓눌렀다. “이런 개 같은 인생이 또 있을까. 내 인생은 끝났다.” 절망뿐인 심정으로 중얼거렸다.
착륙 후 나를 마중 나온 큰형이 보였다. 내심 ‘고생 많았지, 이제 새 출발 하자’라는 위로를 기대했지만 형은 단 한마디 말도 없이 운전만 했다. 그 적막이 얼마나 무거웠는지 모른다. 집에서도 나를 반겨줄 사람은 없어 보였다. 그나마 부모님의 배려로 기도원에 들어가 잠시 몸과 마음을 추슬렀다. 그곳에서 만난 한 장로님은 나를 알지 못했음에도 따뜻하게 대해 주셨다. 놀랍게도 10년 뒤 나는 그분이 섬기던 교회의 사역자로 초빙을 받게 된다. 돌이켜보면 하나님은 이미 내 인생을 준비하고 계셨다.
그러나 당시 내 상태는 심각히 무너져 있었다. 부모님의 돌봄으로 건강이 조금씩 회복되는 듯했지만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마약의 유혹이 침범했다. 폭우가 쏟아지던 어느 날은 방바닥에 물이 가득 차고 손가락은 칼에 베여 피가 뚝뚝 떨어지는데도 약에 취해 아무런 대처도 하지 못했다. 얼굴 근육이 마비되고 극심한 불안과 공포가 밀려왔다. 내가 한 건 커튼을 친 채 숨어 떠는 것뿐이었다. 세상과 단절된 방 안에서 나는 점점 괴물이 되어 가고 있었다.
가족 곁에서 하나님의 빛을 어렴풋이 느끼기도 했지만, 나는 여전히 자기연민에 갇혀 있었다. “나만 힘들고, 나만 불쌍하다”라는 생각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했다. 다시 건달들과 어울리며 마약과 술에 취하고 싸움을 일으키는 일상들이 이어졌다. 거리에서 본 현실은 참혹했다. 10달러에 몸을 파는 여성들, 썩은 이빨과 악취 속에서 하루 한 끼로 버티는 아이들, 외상으로 받은 약을 다 써버려 결국 목숨을 잃는 이들…. 나 역시 그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거짓말을 밥 먹듯 하며 사람들을 속이고 돈을 뜯어냈다.
막내아들의 방황은 부모님 마음에 대못을 박았다. 엄마가 “이 돈을 줘야 할지 모르겠다”라며 우시던 날조차 난 그 돈을 낚아채 마약에 썼다. 결국 어린 시절부터 나를 가장 예뻐했던 형은 나를 집에서 쫓아냈다. 기대가 큰 만큼 미움과 실망도 컸던 것이다. 본명 ‘박준성’조차 쓰지 말라며 내쳐졌다.
나는 멕시칸들이 모여 사는 변두리 싸구려 아파트로 옮겨갔다. 그곳에서도 여전히 쓰레기 같은 삶을 살았다. 하지만 내가 거리에서 낡은 키보드를 두드리면 아이들과 어른들이 몰려나와 함께 노래하고 춤을 췄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여전히 음악인임을 느꼈고 현실에선 ‘약쟁이(Junkie)’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고 있었다.
내 몸과 마음은 급속도로 무너져 갔다. 호흡곤란, 마비, 구토, 극심한 고통이 찾아왔고, 피를 토했다. 죽음이 가까워졌음을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이 마약을 하던 친구가 저지른 사건에 연루되면서 더는 애틀랜타에도 머물 수 없게 됐다. 나는 또다시 짐을 쌌다. 이번에는 셋째 형이 있는 댈러스로 향했다.
정리=김수연 기자 pro111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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