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할머니가 살던 집은 우리 부부가 살기에 충분했다. 일본 쇼와시대에 나무와 다다미로 지은 집이었다. 전기 스위치도 없고 뜨거운 물을 사용할 수 없는 집. 점점 편리해지는 세상에서 시간이 멈춘 움막 같은 처소는 하나님이 우리 부부를 위해서 구별해 놓은 곳 같았다.
일본교회가 우리 부부를 알기에 조선인을 받아주셨다. 일본 성도들은 “이 땅에 조선학교 같은 학교가 있는 줄 몰랐다”며 지금까지 존재하는 것을 놀라워했다. 사실 한국인들도 조선인들이 현재 다니는 조선학교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할머니 집에서 값나가는 물건이 하나 있었다. 방 가운데 놓인 조상 숭배 불단이었다. 일본 성도들이 와서 망치로 부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드렸다. 9년간 이곳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있음에 감사하다.
추운 겨울 어느 날 문득 이 집에 살던 할머니 영혼이 생각났다. ‘이렇게나 춥고 외롭게 사시다 돌아가셨구나.’ 무엇보다 불당 앞에서 우상 숭배하며 평생 살았을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현재 일본 땅에는 800만개 신이 있다고 한다. 모든 것이 신이 되는 곳이다. 사람도, 고양이도, 먹는 오이도, 칼도…. 일본인이 얼마나 공허하고 두려우면 마음 의지할 것을 이렇게나 많이 만들었을까 싶었다.
하지만 일본은 복음의 씨앗이 뿌려진 땅이다. 1549년 프란치스코 자비에르 선교사에 의해 이 땅에 복음이 전해졌지만 1597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금교령을 선포한다. 1860년 후반까지 기독교의 모든 것을 박해하며 이 땅에 복음이 뿌리내리지 못하게 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억압되고 갇힌 사회에서도 7대 이상을 신앙을 지켜온 이들이 살고 있었다. 철저한 박해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가 멈추지 않았다. 나가사키에 가면 1500년대 후반부터 1800년대 중반까지 250여년간 이어진 종교 박해로 30만명 이상이 순교한 현장이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나가사키 순례지다.
딸이 사는 고베의 건물 앞 도로는 순교자들이 질질 끌려갔던 길이었다. 순교자들은 한겨울 귀와 코가 잘린 채로 교토 오사카 고베를 지나 나가사키까지 1000㎞ 이상을 끌려가 결국 십자가에 달렸다. 고베 시내가 훤히 내려다 보여 등산객으로 붐비는 산 정상에서 조금만 비켜나면 상상도 못 할 십자가 무덤들이 즐비하게 세워진 풍경을 접하게 된다. 자기 나라를 떠나 이 땅에서 복음으로 살던 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이렇게 묻혀 있다. 일본인도 잘 모르는 기독교 흔적들이 여기저기 많이 있었다.
일본 땅에는 오늘도 길이 참으시는 하나님 은혜가 있다. 그 땅 한구석에 우리 조선인들이 함께 있다. 복음이 덮인 흑암 같은 이 땅에서 사상과 이념에 갇혀 숨소리도 제대로 못 내는 조선인들.
이 땅에서 이들과 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들은 아직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못 했구나.’ 나는 유관순 열사와 같은 독립운동가는 아니지만 자꾸 이들을 해방시키고 싶다. 아직 포도원에 들어가지 못한 나중 된 자들 조선인들을 주님이 찾고 있다.(사 41:10)
정리=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GoodNews paper Ϻ(www.kmib.co.kr), , , AIн ̿
5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