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임시국회에서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 통과 가능성이 높아지자 기업들이 파업 노동자들을 상대로 걸었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취하하거나 취하를 검토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정부·여당이 손배 제한 내용을 담은 법안 처리를 예고하는 상황에서 소송을 진행해봤자 실익이 없고, ‘모난 돌’ 취급만 받을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산업계 전반에 걸쳐 노사 분쟁 대응 기조 자체가 변화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현대제철은 13일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 노동자들을 상대로 제기한 46억1000만원 손배 소송을 취하했다. 2021년 비정규직지회 소속 협력사 노동자들이 당진제철소 점거 농성을 벌인 데 대한 소송이었다. 회사는 180명을 상대로 200억원, 461명을 상대로 46억1000만원 규모 소송을 제기했는데 전날 취하한 사건은 2차 소송 건이다. 1차 소송은 지난 6월 1심 법원이 5억9000만원의 배상 책임을 인정해 노조가 항소한 상태다.
이번 소송 취하는 여권의 지속적인 압박과 노란봉투법 통과 가능성을 의식한 조치로 풀이된다. 노란봉투법은 사용자의 범위를 확대해 하청업체에 대한 원청 책임을 강화하고 노조·노동자에 대한 손배 범위를 제한하는 내용이 골자다. 특히 개정안은 사용자의 불법행위에 대항하는 노조 행위에 대해서는 노조·근로자의 책임을 면책하는 제3조 2항을 ‘법 시행 전 발생한 손해’에 대해서도 소급적용하도록 했다. 기업 입장에선 소송을 유지하더라도 개정법이 시행되면 실익이 제한적일 수 있는 것이다.
한화오션도 2022년 경남 거제사업장 도크에서 점거 농성을 벌인 하청노조 집행부 대상 손배 소송 취하를 검토하고 있다. 한화오션의 전신인 대우조선해양 시절 제기된 이 소송은 손해배상 청구 규모가 470억원에 달한다. 민주당의 중재 속에서 사측은 하청노조와 소송 취하를 전제로한 협상을 진행 중이다. 이 역시 정치권 입김과 노란봉투법 강행 추진 기류가 영향을 미쳤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민주당은 현대차에도 하청노동자 상대 소송 취하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노란봉투법이 통과되더라도 실제 현장에 미칠 파장을 가늠하기 어려워 기업들이 신중 모드로 대응하고 있다는 관측도 많다. 현대제철의 경우 1차 소송 건에 대해서는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한화오션은 지난달 말 사측과 하청노조와의 협의가 막바지에 달했다가 이달 들어서는 별다른 진전이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한 업계 관계자는 14일 “노란봉투법 통과 여파를 고려하면서 기업들도 신중히 접근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재계는 노란봉투법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문턱을 넘은 지난달 말부터 노란봉투법 저지를 위한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지난 12일 국회의원 전원에게 경영계 우려를 담은 서한을 전달한 데 이어 13일에는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과 비공개 회동을 갖고 개정안 수정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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