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이 산업계 뇌관으로 떠올랐다. 노사 관계에 있어 사용자 범위를 확대하고 노조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한 노조법 개정안은 2015년 19대 국회에서 처음 발의돼 10년 넘게 논의가 이어졌지만 경영계와 노동계, 보수·진보 정당간 입장차가 워낙 커 공전했던 사안이다. 집권여당이자 국회 과반 의석을 확보한 더불어민주당이 8월 임시국회에서 노란봉투법을 처리하겠다고 밝힌 만큼 이번에는 시행 수순을 밟게 될 것으로 보인다.
노조법 개정안의 핵심은 ‘사용자의 범위 확대’ ‘노동쟁의의 대상 확대’ ‘노조·조합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제한’이다. 노동계는 노동자 권리와 파업권 보장을 위해 필수적인 내용이라고 보지만 경영계 입장은 다르다. 경영계는 개정안의 사용자 개념이 모호하고 경영 주체가 판단하는 ‘경영상 결정’까지 파업 대상이 돼 산업 현장에 대혼란을 야기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노사 문제 전문가들은 불필요한 노동 분쟁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보완 입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실질적 지배’ 따지는 분쟁 불가피
노란봉투법은 2014년 쌍용차 파업 노조원이 사측에 47억원을 손해배상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온 것을 계기로 논의가 시작됐다. 노조 쟁의행위에 대한 무분별한 손해배상 청구를 막자는 공감대가 형성됐고, 파업 노조원들을 돕기 위한 노란봉투 성금 운동에서 착안해 노란봉투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19대 국회부터 폐기와 재발의를 반복했던 법안은 윤석열정부에서 두 차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으나 대통령 거부권 행사로 무산됐다.
법 개정 논의의 출발은 노조법 3조에 담긴 손해배상 제한이었다. 그러나 경영계가 더 큰 우려를 표하는 건 사용자 개념을 명시한 노조법 2조다. 개정안은 사용자 개념을 ‘근로조건에 대하여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까지 넓혔다. 원청 사업자와 직접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더라도 하청 노동자가 원청을 상대로 교섭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재계에서 ‘원청이 1년 내내 교섭만 할 수 있다’고 토로하는 배경에 이 조항이 있다. 자동차 처럼 수십, 수백개 업체와 다단계 하도급 관계를 맺고 있는 업종에선 다수 하청업체가 원청을 상대로 줄줄이 교섭을 요구할 수 있다는 얘기다. ‘교섭 상대가 맞는지’ 따지는 노동 분쟁도 불가피하다. 원청이 교섭을 거부하면 하청업체는 노동위원회 제소나 소송, 파업 등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현재 하청업체가 4000개가 넘는데 여러 하청업체가 교섭을 요구해오면 교섭대상 여부를 회사가 자체적으로 판단할 수 없어 극도의 혼란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과도한 우려”라고 일축하고 있다. 노동위원회 판단, 법원 판례 등을 토대로 정부가 매뉴얼을 마련하면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문제라는 것이다. 노동계도 원청의 ‘실질적 지배력’을 인정하는 판례가 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입법화하는 조치라고 보고 있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달 현대제철과 한화오션이 하청 노조와 단체교섭할 의무가 있다며 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정부 지침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란봉투법은 ‘사용자 판단 기준을 시행령으로 정하도록 위임한다’는 규정 없이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자’라고만 명시해 놓았기 때문에 이를 문제 삼은 분쟁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개정안에 시행령이나 정부 지침을 따르라는 법적 근거가 없어 소송전이 벌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박 교수는 “대법원 전원합의체로 넘어간 HD현대중공업 단체교섭 청구 사건 등 현재 진행 중인 사건들도 노란봉투법의 영향을 받을 텐데 대법원이 실질적 지배를 어느 판례 어느 지침 기준으로 해석해야 하는지도 문제”라며 “어떤 형태로든 법적 구속력을 가진 기준을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영상 판단도 파업 대상
노동쟁의 개념 확대(노조법 2조 5호)도 민감한 이슈다. 개정안에 따르면 노동자들은 ‘근로조건의 영향을 미치는 사업경영상 결정’에 대해서도 노동쟁의를 벌일 수 있다. 기업 이전, 투자 축소, 인수합병, 구조조정 등 기업 운영상 필요한 결정이더라도 노조가 반대 파업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실질적 지배력이 인정되면 원청의 경영상 결정에 대해 하청 노조가 파업을 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경영계는 이런 법 조항이 경영권을 침해한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앞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는데, 이사의 책임을 강화하는 개정 상법과 노조 권한을 강화하는 노란봉투법이 충돌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재계는 노조에 대한 과도한 손해배상 청구 문제 역시 시행령에서 손해배상 상한을 정하는 방식 등으로 개선할 수 있다고 본다. 노란봉투법이 시행돼 노사 관계가 불안정해지고 사법 리스크가 커지면 대기업을 중심으로 해외 이전을 검토하거나 노조가 있는 하청업체와의 계약을 기피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노란봉투법은 도급·위탁 일감을 줄이기 위한 자동화, 기업의 해외 이전을 촉진하는 법이 될 수도 있다”며 “산업별 교섭 체계가 안착되지 않은 한국에선 원·하청 격차가 더 벌어지고 복잡해지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제단체들은 노란봉투법 통과 후 노사 갈등이 격화되는 사태가 벌어지면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다. 노조법은 사용자가 단체교섭을 거부하면 형사처벌할 수 있다고 규정하는데, 명확하지 않은 개념으로 사용자 정의를 확대해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을 위반했다는 논리를 펼 것으로 보인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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