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이어지면서 시원한 곳이 간절하다. 한여름 발끝에서 전해지는 차가운 계곡물의 청량함과 고원 지대 푸르른 자연 속 상쾌한 공기는 더위와 일상의 피로를 동시에 씻어낸다. 물속을 헤치며 걷는 ‘계곡 트레킹’과 차량으로 오르는 고개와 산봉우리가 이를 해결해 준다. 무더위를 물리치러 강원도 정선으로 떠나보자.
먼저 덕산기 계곡이다. 정선군 화암면 북동리에서 정선읍 덕우리로 이어지는 덕산기 계곡은 여름철 ‘계곡 도보 여행지’로 손꼽히는 곳이다. 100m 이상의 수직 절벽(뼝대)이 병풍처럼 둘러싼 이곳은 수억 년의 시간이 빚은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보여준다. 굽이굽이 휘돌아나가는 옥빛 계곡물과 진초록으로 빛나는 곳곳의 소(沼)가 빚어낸 절경이 입소문을 타며 유명해졌다.
덕산기 계곡 안에는 도사곡 덕산기 하북동 같은 오지마을이 깃들어 있다. 마을 사람들은 깊은 계곡에서 바깥세상과 거의 단절한 채 살았다. 2000년대 들어 방송에 소개된 뒤 캠핑족과 오프로드 차량 출입이 늘면서 계곡의 환경 훼손도 심했다. 2014년부터 자연휴식년제에 들어간 계곡은 차량 출입을 통제하고 쓰레기를 되가져 가는 조건으로 트레킹과 물놀이 정도만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덕산기는 계곡이라 해도 물이 항상 철철 넘치지는 않는다. 여름 장마철이나 폭우가 내린 직후엔 수량이 많지만 복류천(伏流川)이어서 물이 금세 빠져나가 버려 며칠 뒤 대부분 건천으로 바뀌는 자갈밭 계곡이다. 큰물이 지고 난 뒤 사나흘이 지나면 물빛이 가장 황홀하다. 많은 비가 와도 1주일 정도면 물이 빠진다고 한다.
계곡 트레킹은 물의 흐름을 따라 상류에서 하류로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상류 북동리를 가기 위해서는 문치재를 넘어야 한다. 문치재는 해발 1000m가 넘는 높은 산에 둘러싸인 문(門)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해발 732m 고갯마루에 오르면 전망대가 마련돼 있다. 이곳에서 내려다보이는 길은 S자로 심하게 구불거리며 급경사 내리막을 달린다.
고개를 넘으면 북동리다. 과거 화전민이 거주하고 금광이 개발된 곳이지만 폐광 이후 한적한 오지 산촌이었다. 마을 아래 북동교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함바위 계곡이다. 이곳도 오지 트레킹으로 인기다.
왼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본격적인 덕산기 계곡이 시작된다. 덕우리까지 7㎞ 남짓 거리에 2시간가량 소요된다. 물놀이와 식사까지 한다면 3~4시간은 잡아야 한다.
비포장 길은 때로는 계곡을 건너기도 하고 때로는 계류를 따라 이어진다. 계곡 속 물은 옥빛을 내며 여름 향기를 뿜어낸다. 물속에 들어가면 등허리를 따라올라 머리끝까지 냉기가 올라온다. 겹겹이 병풍처럼 눈앞을 가로막는 거대한 뼝대를 돌아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길이 고개를 내민다.
계곡을 따라 내려가면 ‘숲속책방’이 있다. 이곳 출신인 고 강기희 소설가와 유진아 동화작가 부부가 선대 때부터 살던 땅에 2017년 책방을 꾸렸다. 진열된 서적은 1만권쯤 된다. 소설부터 인문학 서적, 동화, 만화까지 다양하다.
덕산1교는 덕산기 계곡 트레킹의 종착지다. 이곳을 지난 물줄기는 정선 소금강 계곡을 따라 흘러온 어천과 합류한다. 어천은 정선 읍내로 끼고 돌아나가는 조양강과 만나 동강으로 흘러간다.
정선에서 편하게 더위를 쫓으려면 만항재가 답이다. 해발 1330ｍ지만 차를 타고 쉽게 오를 수 있다. 고개 정상은 야생화 군락지인 산상의 화원이다. 상쾌한 바람, 깨끗한 공기, 진한 녹음, 아름다운 야생화 등을 즐기며 진정한 휴식을 누릴 수 있다.
이곳에서 백운산·새비재(850m) 등을 지나 함백까지 ‘운탄고도(運炭高道)’가 이어진다. 2000년대 이전까지 경제발전의 동력 역할을 한 석탄을 광산에서 역까지 나르는 탄차가 다니던 길이다. 새비재 능선엔 요즘 광활한 고랭지 배추밭이 장관이다. 타임캡슐 공원도 조성돼 있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2001)에서 ‘그녀’(전지현)가 ‘견우’(차태현)와 함께 타임캡슐을 묻었던 곳이다. 영화에 등장했던 소나무는 ‘전지현 소나무’란 이름으로 건재하다. 소나무 옆 의자에 걸터앉으면 시원한 풍광에 더위도 잊게 된다.
여행메모
덕산기 계곡 야영·취사 금지
수수부꾸미… 정선 5일장 먹거리
덕산기 계곡 야영·취사 금지
수수부꾸미… 정선 5일장 먹거리
문치재는 정선읍에서 화암동굴 방향으로 가다 ‘청정고장 북동리’ 간판이 있는 곳에서 왼쪽 오산교를 건너 산길을 오르면 닿는다.
덕산기 계곡에서 야영과 취사는 덕산기 계곡을 대중교통으로 이용하기에는 불편하다. 승용차로 덕산1교까지 간 뒤 원점회귀하는 것이 편하다. 덕산1교 차량 통제소 앞에 차를 주차한 뒤 걸어가야 한다.
계곡 트레킹에는 휴대전화 등을 넣을 수 있는 비닐백 등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아쿠아슈즈도 괜찮지만 헌 등산화가 더 좋다. 보온을 위한 바람막이와 칼로리 높은 초콜릿 등도 요긴하다.
정선에서 가장 손꼽히는 숙소는 하이원리조트다. 해발고도가 높아 한여름에도 서늘하다. 인근 사북·고한 쪽에 맛집이 많다. 매월 끝자리가 2와 7로 끝나는 날엔 정선 5일장에서 수수부꾸미, 곤드레나물밥 등 토속적인 먹거리를 맛볼 수 있다.
정선=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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