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최근 무역 합의를 체결한 한국을 비롯해 일본, 유럽연합(EU) 등이 실제 자동차 등 품목별 관세 인하 시점과 합의 이행 여부 등을 놓고 여진을 겪고 있다. 미국과의 협상 결과를 공식 문서로 만들지 않고 세부 내용은 추후 논의하는 식으로 여지를 남기면서 미국과 주요국 사이에 모호한 기류가 이어지고 있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최근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게 “협상 마무리로 보기엔 아직 성급한 측면이 있다”며 정부의 후속 조치를 요청한 배경에도 이런 측면이 반영돼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한·미 무역 협상의 최종 결과물인 ‘관세 인하’ 시점은 항목별로 조금씩 다르다. 5일 관계부처 설명을 종합하면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미국의 상호관세는 오는 7일(현지시간) 발효된다. 현재 미국에 수출하는 한국산 제품(품목별 관세 제외)에는 기본관세 10%가 적용 중이다. 7일부터는 미국과 합의한 상호관세 15%(기본관세 포함)로 변경된다.
지난 5월부터 발효된 25% 자동차 관세의 15% 인하 시점은 불투명한 상태다. 정부 관계자는 “상호관세와 달리 자동차 관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최종 행정명령을 내리지 않아 기업들도 혼란스러운 상황”이라며 “조만간 공식 발표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보다 앞서 협상을 타결한 일본(지난달 22일)과 EU(지난달 28일)도 여전히 25%의 자동차 관세를 물고 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미·일 관세 협상을 진행했던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재생상은 이날부터 닷새 일정으로 다시 미국 워싱턴DC를 방문해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과 회동하고 자동차 관세 인하를 요구할 예정이다. 아카자와 경제재생상은 이날 참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해 “하루라도 빨리 자동차 관세에 관한 (트럼프) 대통령령이 나오도록 촉구할 것”이라고 했다.
관세 인하 대가로 제시한 천문학적 규모의 대미 투자 이행 여부도 향후 갈등의 뇌관으로 거론된다. 정부는 이날 개최한 ‘성장전략 태스크포스(TF)’ 1차 회의에서 총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금융 패키지(출자·대출·보증) 조성을 미국 측과 약속했다고 밝혔다. 1500억 달러는 한·미 조선 협력 프로젝트(마스가·MASGA)에 투입하고, 나머지 2000억 달러는 반도체·의약품·이차전지 등 경제안보 분야 협력에 사용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기업들의 대미 투자계획 수립부터 정부의 금융지원 실행까지는 시간 소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김 장관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임기 내에 (활용)’ 이런 얘기가 있는데 그 돈은 그럴 수 있는 규모가 아니다”며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돈이 들어갈 시기가 달라질 수 있다. 굉장히 유동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대미 투자펀드 수익의 90%를 가져간다는 미국 측 주장에 대해서도 “그건 아니다. (미국의 90% 주장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건 아니잖느냐”고 일축했다.
막대한 대미 투자를 약속한 일본·EU 등도 모호한 투자 약속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를 피하려 한다는 진단도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관세와 달리 투자와 구매 약속은 집행 여부를 감시하기 쉽지 않다”며 “EU는 미국에 약속한 투자를 기업에 명령할 권한이 없고, 일본이 약속한 투자 대부분은 대출 형태”라고 보도했다.
세종=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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