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부과하는 상호관세에 관한 협상이 타결됐지만 반도체·의약품 등 품목의 관세율과 부과 시기라는 ‘2라운드’가 남아 있다. 정부는 일본과 마찬가지로 ‘최혜국 대우’(MFN·특정 국가에 부여한 가장 유리한 통상 조건을 다른 나라에도 같게 적용)를 약속받았다고 강조하지만 부과 대상이 될 세부 품목과 행정절차 등 변수가 많아 실제 이행까지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4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한국의 반도체·의약품·핵심광물 등에 대한 품목별 관세율, 부과 시기, 행정 포고령 등 관련 절차는 모두 미정이다. 미국이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해당 품목들의 안보 영향을 조사 중이기 때문에 지난 협상에서도 관련 세부 내용은 발표되지 않았다.
현재 한국산 반도체에는 1997년 세계무역기구(WTO) 정보기술협정(ITA)에 따라 회원국 간 무관세(0%)가 적용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해당 품목에 대해 별도 관세 부과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이어서 0% 체제 유지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국산 의약품 역시 품목별 차이는 있지만 현재 대부분 무관세 혜택을 받고 있다.
다만 한·미 양국은 지난 협상에서 한국의 반도체·의약품 등 전략 품목에 대해 일본과 마찬가지로 ‘최혜국 대우’를 적용키로 합의했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상태다. 미국이 추후 다른 국가와 더 낮은 관세율에 합의할 경우 그 조건을 한국에도 동일하게 적용한다는 의미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달 31일 협상 타결 직후 브리핑에서 “향후 부과가 예고된 반도체·의약품 관세 역시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은 조건이 적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도 “한국이 반도체·의약품 분야에서 어떤 나라보다 나쁜 대우를 받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는 일본, 유럽연합(EU)에 적용된 조치와 유사한 수준이다. 일본은 최근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반도체·의약품 등에 대해 최혜국 대우를 약속받았고, EU 역시 최대 15% 수준의 관세율을 적용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혜국 대우를 받더라도 현재 관세율이 0%인 반도체업계의 부담이 커지는 건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한국 기업의 반도체 생산이 모두 국내에서 이뤄지는 것도 아니므로 제3국 생산품은 최혜국 대우를 받기 어려울 수 있다.
품목별 관세가 더 높게 책정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관세율이 25%였던 자동차 관세가 한국·일본 등 일부 국가에 한해 15%로 조정된 것처럼 반도체 역시 15%보다 높은 관세가 부과될 여지도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일본과 EU에 준하는 대우가 실제로 적용되도록 후속 대응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입장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한국도 일본과 함께 최혜국 대우를 받은 이상 동일 적용을 받도록 하는 게 최우선 과제”라며 “자동차도 반도체·의약품 등 다른 품목과 함께 묶여 발표될 가능성이 있어 모니터링을 지속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관련기사 6·8면
세종=김혜지 기자 heyj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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