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경색 의심 99%” AI의 경고… 환자 골든타임 지켰다

"그 순간 함께 온 따님 얼굴이 사색이 됐죠. 환자의 말이 흐릿해지고 얼굴 근육이 조금씩 처지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뇌CT 판독 결과를 기다리기도 전에 응급실 모니터에 '뇌경색 의심'이라는 빨간 경고가 떴습니다. 인공지능(AI)이 먼저 위험을 감지한 겁니다." 가천대 길병원 응급의학과 임용수 교수는 지난 6월 중순 뇌경색 의심 70대 여성 환자가 구급차에 실려 왔을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환자는 보호자의 부축을 받으며 응급실에 도착했지만 의식은 혼미했고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한 채 입술만 달싹였다. 왼쪽 팔다리의 마비 증상도 이미 시작된 상태였다.

임 교수는 4일 “그 짧은 몇 분이 뇌의 생존을 좌우하는 골든타임이었다. 의료진의 빠른 판단과 대응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순간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날 의료진은 다른 의료기관처럼 영상의학과 전문의 판독을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CT 촬영이 끝난 지 채 3분도 지나지 않아 응급실 중앙 모니터에 ‘오른쪽 중뇌동맥 폐색 의심(99.85%)’이라는 메시지가 자동으로 표시된 것이다.

AI의 실시간 경고 덕분에 응급의학과 의료진은 곧바로 신경과, 신경외과에 연락했고 환자는 응급실 도착 30분 내에 혈전(피떡) 용해 약물 투여, 1시간 20분만에 혈전제거 시술을 받을 수 있었다. 임 교수는 “AI가 없었다면 CT 촬영 후 판독까지 10~20분은 걸렸을 것”이라며 “그 사이 뇌경색이 확장되고 판단과 치료 모두 늦어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의료 현장에 AI의 활용이 점차 늘고 있다. 주로 X선이나 CT, MRI, 내시경, 안저 촬영, 골밀도 등의 영상 및 측정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딥러닝한 AI가 질병 진단 영역에서 의사를 보조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근래엔 치료와 질병 악화 예측 분야로 보폭을 넓히고 있다. 입원 병상에선 심박수·혈압 등 활력 징후 분석을 통해 심정지 발생도 예측하고 있다. 대장·유방·폐암 등 각종 암을 비롯해 폐질환, 척추·무릎질환, 눈질환, 수면무호흡증 등 AI 활용 질환은 점점 확장되는 추세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AI 기반 디지털의료기기(소프트웨어 단독 혹은 하드웨어에 장착)로 허가된 제품은 6월 말 기준 388개에 달한다.

최근엔 대학병원, 종합병원 응급실에도 AI가 도입돼 뇌졸중과 심장질환 등 중증 응급질환 진단 및 대처에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388개 AI 의료기기 가운데 뇌영상과 심장혈관 영상 기반 제품은 각각 30여개에 달한다.

길병원은 최근 한국보건산업진흥원 ‘혁신의료기기 시범 보급 사업’의 응급의학 분야에 선정돼 AI 기술을 활용한 응급환자 진단·치료에 본격 나섰다. 국내 업체가 개발한 AI 기반 뇌졸중 분석 솔루션(StroCare Suite)과 심부전 조기 진단 AI 프로그램(AiTiA LVSD)을 앞으로 2년간 응급실에서 적용하게 된다. 그간 해당 AI 시스템을 응급실에 각각 따로 도입한 병원은 있지만 둘 다를 동시에 시작한 곳은 길병원이 처음이다. AI 뇌졸중 분석 시스템은 비조영 CT 영상(조영제 없이 촬영한 CT)만으로도 뇌경색과 뇌출혈, 대뇌동맥 폐색 여부를 3분 안에 진단할 수 있다. 대뇌동맥 폐색 뇌경색 환자의 경우 막힌 혈관을 뚫기 위해 4시간 이내에 혈전용해제를 투여하거나 6~12시간 안에 혈관내 혈전제거 시술을 받아야 장애를 줄이거나 목숨을 건질 수 있다. 임 교수는 “특히 혈전제거술은 시술팀의 준비와 가동이 필요한데, AI 시스템을 통해 일련의 과정에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정규 시간이 아닌 야간이나 주말에 더욱 유용하다”고 말했다. 실제 대뇌동맥 폐색 뇌경색 환자의 응급실 내원에서 혈전제거술을 받기까지 시간이 AI 도입 전후 평균 29분 단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심부전 진단 AI는 심전도 데이터만으로 치명적인 심부전 위험을 감지한다. 심부전은 초기 자각 증상이 미미하고 치료 시기를 놓치면 심각한 후유증이나 사망까지 초래할 수 있다.



인제대 일산백병원도 지난해 7월 응급의료센터에 CT 영상 자동 분석 AI 뇌출혈 조기 진단 시스템(에이뷰 뉴로캐드)을 도입했고 지난 6월부터는 심전도 데이터를 통해 심부전, 심근경색, 부정맥 등 중증 심장질환 여부를 빠르게 알려주는 AI 프로그램(ECG 버디)을 가동 중이다. 이들 AI 시스템은 각각 정부의 신의료기술, 신의료기술 평가 유예 대상(평가 절차 일부 면제) 인증을 받았다. 다만 건강보험이 안되기 때문에 AI 시스템을 이용하려면 환자 동의를 얻어야 한다.

이 병원 박준석 응급의학과 교수는 “응급의료센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다. 특히 뇌출혈이나 급성 심근경색 환자는 몇 분안에 판단하고 조치해야 생명을 살릴 수 있다”면서 “하지만 현실적으로 응급실에 영상의학과나 심장내과 전문의가 상주하긴 어렵다. 야간이나 주말에는 더욱 그렇다. AI 진단 보조 시스템이 필요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AI 시스템이 의사를 대신하는 건 아니다. 결국 최종 진단과 처치는 의사가 한다. AI는 의사가 중요한 문제를 놓치지 않게 도와주는 파트너 역할을 하는 것. 박 교수는 “더구나 환자가 몰릴 때나 다급한 상황에선 의심해야 할 사례를 먼저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골든타임 확보에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실제 응급실에선 중증 응급환자 보다는 오히려 진단이 모호하거나 증상이 애매한 환자군에서 AI의 임상적 가치가 발휘되는 경우가 많다. 중증 환자의 경우 CT나 심전도만 봐도 의사들이 빠르게 진단하고 치료를 시작할 수 있다. 반면 증상이 경미하거나 검사 소견이 애매할 땐 진단에 더 많은 시간이 걸리고 이로 인해 치료 시점이 늦어진다는 것이다. 이때 AI는 미묘한 패턴이나 초기 소견을 분석해 조기 진단 가능성을 열어주고 치료 결정을 앞당기는데 기여한다. 즉 AI가 의사 판단에 확신을 더해 주고 진단의 사각지대를 메우는 ‘보조자’로서 역할이 크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앞으로 기술이 더 정교해지고 데이터가 축적될수록 응급의료 현장에서 AI는 ‘긴급한 판단이 필요한 순간’ 뿐 아니라 ‘진단의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더욱 두각을 드러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또 “신뢰도 높은 알고리즘이 지속 검증된다면 일부 반복적이고 표준화 가능한 영역(경증 환자 선별, 처방 지원, 영상 재검토 등)에선 AI가 의사를 대체하는 부분도 생길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글·사진=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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