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수출하는 한국산 자동차의 관세가 일본·유럽연합(EU)과 같은 15%로 확정되면서 업계에선 “최악은 피했다”는 분위기다. 다만 그동안 누렸던 무관세 혜택이 사라져 미국 시장에서의 경쟁력은 축소했다. 현대자동차·기아는 미국 현지 생산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대응한다는 전략이다.
업계에선 그동안 미국에서 현대차·기아의 가격이 일본이나 EU 브랜드보다 일반적으로 5~8% 낮은 수준이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일본과 EU가 관세를 기존 25%에서 15%로 낮추는 데 성공하면서 가격 역전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한국만 관세가 25%로 유지될 경우 현대차·기아의 연간 영업이익 감소 폭은 9조~10조원에 달할 것이란 전망도 나왔었다. 31일 한국 협상단이 미국 정부와 15% 관세에 서명하면서 이런 우려는 해소했다.
고관세로 인한 경쟁력 약화로 철수설까지 제기됐던 한국GM도 안도하는 분위기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는 “한국이 일본·EU와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고 자동차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이 없어진 건 긍정적”이라고 밝혔다.
최악은 피했지만 관세 이슈가 불거지기 전과 비교하면 상황이 좋지 않다. 국내 자동차 제조사는 미국에 수출할 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0% 무관세 혜택을 받았었다. 2.5% 관세를 물었던 일본·EU에 비해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기 유리했다. 결과적으론 경쟁국과 같은 15%의 관세를 내게 됐지만 산술적으로는 기존보다 2.5%의 손해를 본 셈이다. 관세 이슈 초기에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미국 백악관에 가서 발표한 210억 달러 규모의 투자도 효과를 보지 못한 게 됐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이날 관세 협상 관련 브리핑에서 “한국 대표단은 자동차의 경우 12.5%의 관세율을 주장했지만 트럼프가 받아들이지 않고 일률적으로 15%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국내 자동차업체는 관세로 인한 원가 부담을 떠안게 됐다. 한화투자증권은 내년에 15% 관세가 적용되면 현대차·기아가 부담해야 할 비용이 5조631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날 현대차 주가는 4.48%, 기아는 7.34% 떨어졌다. 완성차업계 관계자는 “중국 시장을 내수 브랜드가 점령하면서 미국 자동차시장에선 어느 때보다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관세 2.5%가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어마어마하고 그 부담을 기업이 떠안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차·기아는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의 생산량을 내년 말 120만대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단기적으로 재료비나 가공비를 절감해 생산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도 추진된다. 미국 앨라배마 공장(HMMA)을 20년 가동하며 얻은 노하우를 HMGMA에 적용할 계획이다. 자동차 부품을 현지 조달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미 관련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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