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본인은 대통령이나 국무총리가 아니면 다른 나라 협상단과 직접 협상하지 않는데 한국의 경우 각료급인데도 특별히 협상했다는 건 한국을 존경하고 중요시한다는 걸 방증하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 협상단 일원으로 30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만난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의 전언이다.
판을 흔들고 허를 찌르는 트럼프식 거래의 기술이 이번 한·미 무역협상 타결 과정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담판 예고와 협상, 결과 발표도 모두 트럼프가 주도했다.
트럼프는 한국 협상단을 이날 오후 백악관으로 부른 뒤 트루스소셜로 협상을 예고했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과 한국 측의 예정된 협상을 하루 앞두고 먼저 치고 들어온 것이다.
협상단을 이끈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워싱턴DC 한국대사관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이게 진짜 오늘 이렇게 전격적으로 이뤄질지 알 수 없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면담 계획을) 올리면서 이게 현실화하는구나 알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의 투자액 3500억 달러도 트럼프가 결정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그냥 오케이 사인해주지는 않은 부분이 있다”며 “그게 왔다 갔다 하면서 금액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과정이 있었다”고 전했다.
협상단은 오후 5시쯤부터 백악관에서 트럼프와 30~40분 협상했다. 면담이 종료된 직후 트럼프는 다시 트루스소셜로 협상 타결 소식을 가장 먼저 발표했다. 김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의 달인이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예측하기 힘든 거래의 기술에 한국 협상단이 적절하게 대응해 비교적 선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 장관은 “저희가 모의고사 비슷하게 서로 트럼프 대통령 역할(을 하는) 롤 플레이를 했다”며 “어떻게 답할지 저희 나름대로 굉장히 많은 시나리오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협상단은 미국 측과 협상하는 동안 농산물 수입 확대 문제를 적절히 방어했다고 자평했다. 특히 김 장관은 “(2008년) 광우병 사태 때 있었던 (시위 인원이) 100만명 이상인 사진이 있지 않나. 그 사진을 여 본부장이 준비해 미국에 보여줬다”며 “그런 게 한국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농산물 협상 관련 논의에서 미국 측은 물론 우리 정부 내에서도 강하게 충돌하는 상황이 벌어졌다고 밝혔다. 김 실장은 “미국과 소고기, 쌀 문제에 대해 고성이 오갔고 우리 정부 내에서 전략을 논의할 때도 고성이 오간 적 있다”며 “농축산물이 가진 정치적 민감성을 감안해 개방을 막는 데 주력했다”고 강조했다.
김 실장은 협의 과정에서 미국이 명확한 대답을 해주지 않아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고 전했다. 또 자동차 관세와 관련해 “우리는 12.5%를 끝까지 주장했는데 미국식 의사결정 과정에서 ‘됐고, 우리는 이해하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 15%다’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윤예솔 기자 joyls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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