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처음 상실을 경험한 건 초등학교 4학년 때다. 그의 표현대로 ‘너무도 깊이 사랑하고 좋아했던’ 엄마를 암으로 떠나보냈다. 시간이 지나면서 더 따뜻한 사랑을 받으며 엄마의 빈자리가 채워지길 바랐지만 인생은 바람대로 흐르지 않았다.
몸은 하염없이 연약해졌고 구토와 하혈이 일상이 되면서 응급실에 실려 가는 날이 잦았다. 건강과 삶의 전환점을 고민하던 그는 2009년 해외 봉사활동을 결심하고 남아프리카공화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남아공에 도착한 지 20여일쯤 지났을 때 남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누나 나 죽고 싶어. 나, 누나가 너무 보고 싶어. 누나가 옆에 있었으면 좋겠어.”
“○○야, 제발 그러지 마. 누나가 지금은 갈 수가 없으니 매형에게 가서 도와달라고 꼭 얘기해. 제발 그런 생각 접어. 부탁할게.”
남동생은 계속해서 죽겠다는 말을 반복했다. 남동생을 말리고 타이르느라 손에서 전화기를 놓을 수 없었다. 수화기 너머로 24시간 가까이 사투를 벌이다 가까스로 통화를 마무리했다. ‘힘들어서 저렇게 말하는 거겠지. 괜찮을 거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힘겹게 뱉어내던 그 말들이 세상에서 들을 수 있었던 동생의 마지막 목소리였다.
얼마 후 아버지로부터 남동생이 세상을 떠났다는 연락을 받았다. 믿을 수가 없었다. 나지막이 되뇌었다. ‘왜 너여야 해. 그건 나였어야 했는데….’ 남동생 장례를 치르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오지 마라. 지금 준비해서 출발해도 25시간 넘게 걸리는데, 장례가 끝나 있을 거다. 몸도 성치 않잖니.” 아버지의 말이 매몰차게 느껴졌다. 너무도 비참하고 애통했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었다.
칠흑 같은 밤, 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슬픔이 더 커졌다. ‘남아공은 남반구여서 동생이 마지막으로 바라보던 하늘과 별자리조차 다르겠구나.’
몸도 정신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채 몇 주간을 보낸 그는 제모기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깎았다. 파르라니 깎인 머리가 어색해 보였지만 거울을 바라보며 스스로 말했다. “새로 자라는 머리카락은 행복한 기억만 갖고 자랄 거야.”
이스라엘로 떠나 선교 단체에 몸담고 봉사활동을 하면서 겨우 평안을 찾아갔다. “왜 동생을 지켜주지 않고 죽게 하셨는지 원망만 되다가 어느 순간 하나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어요. ‘그 아이가 네 동생이기 이전에도, 살아오는 동안에도, 지금 이 순간도 나의 영혼이다’라고요.”
수년이 흐른 후 한동안 연락을 끊겼던 아버지 소식이 전해졌다. 아버지 본인 부고였다. 이번에도 장례식에 갈 수 없었다. ‘어떻게 아빠는 나한테 끝까지 이럴 수가 있어.’ 치미는 원망과 분노 속에서도 수십 번 되뇌었다. ‘더 이상 아빠를 원망하지 않을 거야. 아빠의 평안을 하나님께 기도하겠어.’
하지만 ‘누구의 곁도 지키지 못했다’는 마음의 짐은 그를 계속해서 짓눌렀다. 어머니, 남동생에 이어 아버지마저 제대로 된 애도를 하지 못한 채 떠나보낸 그였다. 상실의 아픔을 누군가에게 위로받지도 못했다. 장례식에서 상복 입고 마음껏 슬퍼하고 사람들의 위로를 받는 게 소원이었을 정도다.
그의 이름은 배진희씨. 그가 홀로 지고 있던 그 짐을 조금이나마 내려놓게 해 주는 사람들이 찾아왔다. 로뎀나무라는 이름으로 모인 이들이 그를 다시 살게 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보건복지상담센터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상담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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