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후폭풍 없이 쌩쌩한 미국경제… 트럼프가 옳았다?

“가짜뉴스와 소위 전문가들은 이번에도 틀렸다. 관세는 미국을 번영으로 이끌고 있다. 새로운 공장과 일자리, 수조 달러의 투자가 몰려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9일(현지시간)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에서 수입품 물가에 대한 보고를 받자마자 트루스소셜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CEA는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5월까지 6개월간 수입품 가격이 0.1% 포인트 하락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출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장벽이 수입품 가격을 끌어올려 인플레이션을 일으키고 궁극적으로는 경기 침체로 이어질 것이라던 금융가 이코노미스트나 경제학자들의 분석과는 다른 것이었다.


올해 상반기 미국의 경제 지표들은 트럼프 정책의 후폭풍을 우려한 전문가 전망을 뒤집었다. 미 노동부 산하 노동통계국이 매월 산출하는 소비자물가지수(CPI)의 전년 동월 대비 상승률은 트럼프가 취임한 지난 1월 3.0%를 기록한 이후 6월까지 5개월간 2%대를 벗어나지 않았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 때 제시한 인플레이션 목표치는 2%였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연준 목표치에 근접한 물가상승률이 나타난 것이다. 지난 15일 공개된 6월 CPI의 전년 동월 대비 상승률은 2.7%로 반등했지만 이튿날 발표된 6월 생산자물가지수(PPI)는 2.3%로 5월(2.7%)보다 하락했다. 도매상인의 체감물가를 나타내는 PPI는 소비자물가를 선행하는 지표로 간주된다.


미국 고용시장도 탄탄하다. 노동통계국이 매월 비농업 부문 신규 고용자 수와 함께 집계하는 실업률은 트럼프 취임 후 6개월간 4.0~4.2% 사이를 오가며 사실상 ‘완전 고용’ 수준으로 관리됐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에 따른 경기 불확실성과 정부효율부(DOGE)의 연방정부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상반기에만 약 80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됐다.

완만한 물가와 탄탄한 고용이 미국 경제 하방을 지탱하는 가운데 기업들은 예상을 깨고 호실적을 발표하고 있다. 금융정보 업체 팩트셋에 따르면 지난주까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 상장사의 80%가 2분기(4~6월) 실적 발표에서 전문가 전망치를 웃도는 매출과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S&P500지수와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는 트럼프의 관세 정책으로 요동쳤던 지난 4월부터 상승장으로 전환됐고 7월에는 사상 최고가 랠리를 이어갔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트럼프는 자신의 공약대로 이민자를 대거 추방하고 연방정부 (고용·하도급) 계약을 파기했으며 고율 관세로 시장에 충격을 가했지만 미국 경제는 올해 상반기 놀라운 회복력을 보여줬다”며 “적어도 지금까지 확인된 경제 지표에서 전문가들의 예상은 깨졌고 앞으로 경기 침체가 찾아온다는 증거도 나오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트럼프 집권 2기 경제 정책, 이른바 ‘트럼프노믹스 2.0’ 아래에서도 미국 경기가 견조하게 성장하자 워싱턴 정가와 월가에선 기존 경제학의 분석 방법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보수 성향 싱크탱크 아메리칸컴퍼스 창립자인 오렌 캐스는 “경제학자들은 정책 변화의 영향을 신중하게 분석하지 않았다”며 “현존하는 경제 모델 대부분은 자유시장이 최적이라는 가정 위에 세워졌기 때문에 이를 거스르는 정부 정책은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결론을 도출하도록 설계돼 있다”고 지적했다.

SMBC닛코증권 수석이코노미스트 출신으로 현재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 보좌관인 조지프 라보르그나는 FT에 “경제 석학들은 수요 예측에만 집중하느라 너무 많은 것을 놓쳤다”며 “인플레이션이 계속될 수도 있다. 하지만 앞으로의 경제를 예측하면서 이미 5개월 연속으로 틀린 석학들을 계속 신뢰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미국 통화 정책을 결정하는 연준 내부에서도 트럼프 정책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을 포함한 위원 대부분은 여전히 관세 정책이 미국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보고 있지만 크리스토퍼 월러와 미셸 보우먼 등 일부 위원은 “관세가 시장에 일회성 충격만을 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상반기 지표들이 착시 현상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는 경제 전문가도 많다. 트럼프 행정부가 각국에 상호관세를 추가 유예 없이 발효한 이후의 효과는 아직 지표에 반영되지 않았고, 감세 정책이나 연준에 대한 기준금리 인하 압박도 하반기 미국 경제에 부정적 요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CPI를 포함한 6월 물가 지표의 세부 항목을 보면 가전제품과 가구, 의류 등 수입품 가격이 일제히 상승했다. 6월 주택 판매는 높은 대출금리와 집값 탓에 9개월 만에 최저치로 떨어져 주택시장의 침체 신호음을 울렸고, 뉴욕증시에선 기업 실적과 무관하게 수십%씩 급등락하는 ‘밈 주식’ 열풍이 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골드만삭스는 올해 미국의 연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제시했던 2.4%에서 1.1%로 대폭 내렸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모리스 옵스펠드는 “표면적으론 미국 경제가 잘 버티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수면 아래에는 취약성이 도사리고 있다”며 “앞으로 몇 분기 안에 미국 경제에 심각한 상황이 찾아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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