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차 배우 김소향 “창작 뮤지컬 작품에, 나를 새긴다”

“작품 안에 나라는 존재가 새겨진다는 게 배우로서 자부심이 듭니다. 초연부터 참여해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힘들면서도 재밌어요.”

배우 김소향은 올여름 뮤지컬 ‘프리다’(~9월 7일 놀 유니플렉스)와 뮤지컬 ‘마리 퀴리’(~10월 19일 광림아트센터 BBCH홀)의 타이틀롤로 관객과 만나고 있다. 최근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소향은 “‘프리다’와 ‘마리 퀴리’ 모두 초연부터 참여해 애착이 크다”면서 “창작 뮤지컬은 초연 이후에도 디벨로핑을 거쳐야 하는 경우가 많아 배우로서 캐릭터에 대해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는 편”이라고 말했다.


‘프리다’는 신체적 장애와 남편의 여성 편력 등 고통스러운 삶을 예술로 승화시킨 멕시코 화가 프리다 칼로를 소재로 한 쇼뮤지컬이다. 국내 대형 제작사 EMK뮤지컬컴퍼니가 ‘마타하리’ ‘웃는 남자’ ‘엑스칼리버’에 이어 만든 네 번째 창작뮤지컬이자 첫 번째 소극장 뮤지컬이다. 김소향은 2021년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을 시작으로 2022년 초연, 2023년 재연, 2024년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USC) 초청공연 그리고 올해 삼연까지 이름을 올렸다.

‘마리 퀴리’는 방사능 분야의 선구자로 노벨상을 두 번이나 받은 폴란드 출신 프랑스 과학자 마리 퀴리의 삶을 다뤘다. 창작 뮤지컬 ‘마이 버킷 리스트’ ‘팬레터’ 등으로 해외 진출을 이어온 제작사 ㈜라이브는 201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을 시작으로 2020년 초연과 재연, 2023년 삼연을 거치며 완성도를 높였다. 2022년 폴란드 ‘바르샤바 뮤직 가든스 페스티벌’ 초청으로 공연실황 상영회와 미니 콘서트를 진행했고, 2023년 일본 도쿄와 지난해 영국 런던에서 현지 배우와 스태프가 참여한 공연이 이뤄졌다.

김소향은 2018년부터 올해까지 모든 시즌에 참여한 유일한 배우다. 그는 “두 작품의 해외 공연에서 무대 인사를 할 때 진짜 감동적이었다”며 “특히 마리 퀴리의 고향 폴란드에서 접한 관객들의 환호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도쿄와 런던에선 오리지널 한국 프로덕션의 배우로서 무대에 서면서 한국과의 차이를 느낄 수 있어 흥미로웠다고 했다.


‘마리 퀴리’가 트라이아웃에 해당했던 창작산실 이후 초연까지 대대적인 수정이 이루어질 때 그는 캐릭터는 물론 장면에 대해서도 열정적으로 의견을 개진했다. 현재 공연 중인 ‘마리 퀴리’의 일부 장면은 그의 의견이 반영된 결과물이다.

그는 “트라이아웃 공연에서 마리의 감정선이 드러나야 하는 장면에 불필요하게 느껴지는 설정이 있었다. 창작진과 프로듀서가 귀찮을 정도로 수정을 요청했는데, 김태형 연출가가 반영해줬다”면서 “작품에 대한 내 애정을 알기 때문에 ‘마리 퀴리’의 일본과 영국 공연에도 초청한 것 같다. 올해 사연 캐스팅을 제안하면서도 당연히 출연할 거로 생각하고 있더라”며 웃었다.

그는 캐릭터가 구축되는 등 완성된 작품에 출연할 때도 자신이 새롭게 할 수 있는 부분을 찾는다. 배우로서 단순히 역할을 연기하는 것을 넘어 작품 안에 자신을 남기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는 “조금이라도 개선이 필요한 부분을 파고드는 편이다. 편하고 안정적인 것보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성격이다 보니 쉽게 살지 못한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올해 데뷔 25년 차인 그의 삶은 남다른 부분이 많다. 그는 2001년 국민대 연극영화과 3학년 때 뮤지컬 ‘가스펠’의 여주인공 소냐로 데뷔했다. 경험 삼아 치른 오디션에서 기회를 잡은 뒤 연습을 거듭하며 뮤지컬의 매력에 빠졌다. “그저 막연히 배우가 되길 꿈꾸다가 ‘가스펠’에 출연하면서 연기, 춤, 노래가 있는 뮤지컬이 내가 하고 싶은 것이라고 확신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데뷔 이후 오디션을 통해 잇따라 출연 기회를 잡았다. 소극장 뮤지컬에선 주역을 맡았지만, 대극장 뮤지컬에선 조연 겸 주역 커버(배역을 맡은 배우가 무대에 서지 못할 때 대신 연기하는 배우)로 캐스팅되는 경우가 많았다. 배우로서의 전환점을 고민하던 그는 2011년 미국 유학을 떠나기로 했다. 적지 않은 나이에 영어도 익숙하지 않았던 그의 유학을 두고 주변에선 “한국 뮤지컬계에서 잊힐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그는 “10년을 무대에서 치열하게 살았지만 ‘커버 전문 배우’로 머무르는 것 같았다. 브로드웨이와 가까운 뉴욕필름아카데미에서 공부하며 실력을 키우자고 생각했다”면서 “포트폴리오에 담긴 경력을 인정받아 장학금도 받았다”고 말했다.

1년 실기 과정을 마치고 돌아오려던 그는 미국 무대를 경험하고 싶다는 욕심에 오디션을 보기 시작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외국인이다 보니 대사를 연기하는 최종 단계에서 번번이 떨어졌지만 꾸준히 오디션에 참여했다. 결국 2012~2013년 뉴욕이 아닌 미국 내 다른 도시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왕과 나’ ‘올리버’ ‘미스 사이공’에 앙상블 겸 조연으로 출연했다. 특히 시카고에서 올라간 ‘미스 사이공’의 비중 있는 조연 지지 역을 맡으면서 그는 한국인으로는 처음 전미배우조합(Actors' Equity Association, AEA)에 가입할 수 있었다. 미국 공연계는 AEA 소속 배우에게 먼저 출연 기회를 준다.


2014년 김문정 음악감독으로부터 뮤지컬 ‘모차르트’ 중 모차르트의 아내 콘스탄체 역을 제안받고 한국에 잠시 귀국했다. 이어 ‘보이체크’ ‘마타하리’ 초연 등 굵직한 무대에서 잇따라 주역으로 활동한 뒤 다시 미국으로 갔다. 브로드웨이 무대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2017년 오디션을 통해 브로드웨이에서 제작한 ‘시스터 액트’ 인터내셔널 투어에 주연급인 막내 수녀 메리 로버트로 출연했다. 유일한 동양인으로 캐스팅돼 투어를 모두 마친 그는 이후 완전한 귀국을 택했다.

그는 “미국에서 고생한 걸 후회하진 않지만 한국에 돌아오니 안도감과 행복감이 든다”며 “5~6년 미국에 머무는 동안 한국 뮤지컬계 수준도 정말 높아져서, 한국에서 경쟁하는 게 해외에서 경쟁하는 것과 차이가 없어졌다”고 했다.

이후 한국에 정착한 그는 대극장과 소극장을 넘나들며 다양한 배역을 소화하고 있다. 연기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로 자리매김한 그는 연간 평균 3~4편의 작품에 쉴 틈 없이 출연한다.

“주변에선 쉬라고 하지만, 저는 공연을 하지 않으면 답답하고 우울해져요. 제 삶은 뮤지컬 외에 내세울 게 없거든요. 게다가 나이가 들수록 무대와 관객의 소중함이 더 느껴집니다. 하루가 끝났을 때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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