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는 저주 대상이던 부자들의 타협책이었다

부자들은 선망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비판의 대상이기도 하다. 부자에 대한 애증은 오늘만의 이슈가 아니라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다. 이탈리아 경제사학자인 저자는 그 애증의 근원을 역사적으로 파헤친다. 책에는 로마의 네로 황제보다 더 많은 재산을 소유했던 그리스 노예 출신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팔라스부터 현대 최고 부자 중 한 명인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까지 다양한 부자들이 등장한다. 역사 속에서 부자들이 어떻게 부를 축적했는지, 어떤 특권을 누렸는지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하지만 핵심은 부자들에 대한 사회적 기대와 그 기대를 저버렸을 때 어떤 비판이 제기됐는지를 조명하는 것이다.

중세 시대 부자들은 탐욕으로 인해 영원한 저주를 받게 될 죄인으로 취급됐다. 중세 철학자 니콜 오렘은 “초부유층은 정치적 권력 면에서 너무나 불공평하게 남들보다 우위에 있으며, 그 격차는 마치 신이 인간들 사이에 존재하는 것과 같다”면서 “민주적으로 통치되는 도시들은 모든 사람의 평등을 추구하기 때문에 이러한 사람들은 퇴출돼야 하고 그들을 유배 보내거나 추방해야 한다”고 비판하기까지 했다. 책의 원제이기도 한 ‘인간들 사이에서 신처럼’(as gods among men’) 행동하는 부자들은 비난의 대상이었다. 상업과 은행업을 통해 막대한 부를 손에 쥔 당시 부자들은 상당한 문화적, 종교적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 중 일부는 회개하며 모든 재산을 포기하고 종교에 귀의했다. 성인으로 추앙받는 성 프란체스코와 성 고드릭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은 예외적인 경우로 대부분은 현실과 타협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이탈리아 상인 프란체스코 디 마르코 다티니는 생의 마지막 순간, 평생 모은 재산 대부분을 빈민 구제를 위해 기부했다. 저자는 “중세 상인들 사이에서는 아주 흔한 관행이었다”면서 “영원한 저주의 대상이 될 위험과 부 축적에 대한 욕망 사이에 균형을 잡기 위한 의식적인 시도”라고 평가한다.


종교개혁 이후 개인적인 부가 신이 내린 은총의 증거라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책임감을 덜긴 했지만, 기부와 자선이라는 부자들의 전통은 일부나마 이어졌다. “부자로 죽은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는 말을 남긴 앤드류 카네기는 1889년 ‘부의 복음’이라는 책을 통해 “부자가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가치 있는 행동은 평생 모은 재산을 기부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 빌 게이츠는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과 함께 2010년 ‘기빙 플레지(Giving Pledge)’를 만들어 생전에 재산의 절반 이상을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최근까지 기빙 플레지에 서명한 거부들은 240명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부자들의 기부를 순수한 의도로만 해석하기 힘들다는 게 문제다. 미국의 경우 20세기 초만 해도 후원과 기부 규모가 상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이나 기업이 기부를 통해 세제 혜택을 누리지는 못했다. 1917년 기부금에 대한 세제 혜택이 도입되면서 기부는 부유층의 세금 회피 전략의 도구가 아니냐의 의심이 커지고 있다. 더욱이 40% 안팎의 상속세율을 유지하는 서구 국가에는 상속세 면세 한도까지 기부하는 일도 많아졌다. 저자는 “세금 회피 목적의 기부는 면세 상품이나 서비스를 취득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면서 “세금을 내지 않음으로써 공공기관의 재정 능력이 감소하고, 다른 사람들의 복지를 향상시킨다는 자선의 궁극적 목표와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말한다.

역사적으로 부자들이 사회에서 인정받았던 것은 그들의 사유 재산이 공공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저자는 “자선이나 기부 때문이 아니라 공동체가 추가적인 자원을 필요로 할 때 기꺼이 거액의 세금을 납부함으로써 그들의 필요성을 입증한 것”이라며 “특히 전쟁이나 기근, 심각한 전염병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그들은 사회의 기대에 부응했다”고 강조한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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