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7일 9년 가까이 드리웠던 사법 리스크 그림자를 완전히 걷어내면서 ‘뉴 삼성’ 비전 실현에 본격적으로 나설 수 있게 됐다. 삼성전자의 ‘잃어버린 9년’을 극복하는 일이 당면 과제다. 이 회장이 그룹 컨트롤타워 재건, 반도체 기술 리더십 회복, 신성장동력 육성 등 산적한 과제를 해소하고 위기의 삼성을 다시 초일류 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을지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법원의 최종 무죄 선고로 이 회장의 리더십이 본격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는 게 재계 안팎의 평가다. 한 재계 관계자는 “9년간 삼성의 발목을 잡아 온 불확실성이 제거됐다”며 “이제부터 이 회장의 실질적인 리더십이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이 회장이 2016년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돼 ‘사법 족쇄’를 차게 된 이후 과감한 경영 결정이 제때 이뤄지지 않으면서 장기 경쟁력 후퇴기를 지나야 했다.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 30년 넘게 유지해 온 1위 자리를 SK하이닉스에 내줬고, 인공지능(AI) 핵심 밸류체인으로 부상한 고대역폭메모리(HBM) 주도권도 놓쳤다. 파운드리 사업에선 1위인 대만 TSMC와의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다. 여기에 미국 트럼프 정부의 관세 압박과 미·중 통상 갈등 등 대내외 불확실성까지 커지는 상황이다.
삼성 안팎에서는 이 회장이 경영 정상화와 중장기 전략 실행을 위한 조직 정비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컨트롤타워 재건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앞서 이찬희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도 지난해 연간 보고서에서 경영 판단의 선택과 집중을 위해 컨트롤타워 재건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고강도 인적 쇄신도 뒤따를 수 있다. 이 회장은 지난 3월 임원 대상 세미나에서 “삼성은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생존의 문제에 직면했다”며 “경영진부터 통렬하게 반성해야 한다”고 질책한 바 있다. 이 회장의 등기이사직 복귀도 관심사다. 그는 2019년 10월 임기 만료로 등기이사에서 물러난 이후 줄곧 미등기 임원을 유지하고 있다. 책임경영 실천 차원에서라도 그의 복귀가 필요하다는 게 재계 반응이다.
대규모 투자와 인수·합병(M&A) 등 뉴 삼성 로드맵도 본격 가동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삼성은 지난 4월 자회사 하만을 통해 미국 마시모의 오디오 사업부를, 5월에는 독일 냉난방 공조업체 플랙트를 인수했다. 이달 초에는 미국 헬스케어 회사 젤스 인수 계획을 밝혔다. AI과 로봇 등 분야에 대한 대규모 전략적 투자나 글로벌 기업과의 협업 등도 적극 추진될 수 있다. 재계 관계자는 “그동안 전략 실행에 다소 보수적이었던 삼성의 경영이 보다 선명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석구 대한상공회의소 조사본부장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관련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존중하고 환영한다”며 “첨단산업의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기업의 경영 리스크 해소뿐만 아니라 한국경제 전반에 긍정적인 파급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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