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80년 만에 유럽이 최악의 안보 위기에 놓였다며 국방 예산을 2배로 증액할 계획을 밝혔다. 독일은 자국 방위산업 기업들을 향해 “무기 생산 속도를 높이라”고 독려했다. 유럽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탈동맹 기조와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에 맞서 ‘안보 자강’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혁명 기념일을 하루 앞둔 13일(현지시간) 파리 국방부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쟁은 우주와 심해, 사이버 공간 등 다방면에서 벌어진다. 더 이상 전선도, 후방도 없다”며 “1945년 이후 자유가 이토록 위협을 받은 적이 없었다. 우리의 안보를 스스로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017년 320억 유로(51조6500억원)였던 국방 예산에 내년 35억 유로, 2027년 30억 유로의 예산을 추가로 투입하겠다”며 “이를 통해 2027년에는 국방 예산이 640억 유로(103조3100억원)에 도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2년 뒤 국방 예산을 2017년 대비 2배로 늘리겠다는 것이다.
다만 마크롱은 “어떤 경우에도 정부 부채를 늘리는 방식의 재무장은 없을 것”이라며 “국방 예산은 더 많은 경제활동과 더 높은 생산성을 통해 충당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크롱은 “자유를 수호하려면 (적에게) 두려움을 줘야 한다. 이를 위해선 우리가 강해져야 한다”며 예비군 제도를 확대하고 청년의 군 참여와 관련한 정책 방향을 올가을까지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프랑스는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 중 유일의 핵보유국이자 가장 강력한 군대를 보유한 국가”라며 “마크롱의 이날 발언은 미국과의 동맹 관계가 약화됐고 러시아의 위협 수위가 심각하게 증대됐다고 강조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마크롱은 지난 9일에는 또 다른 핵보유국인 영국의 키어 스타머 총리와 양국 핵무기 사용 공조에 사상 처음으로 합의했다. 이 합의와 관련해 영국 정부는 “유럽에 가해지는 어떤 극단적 위협도 양국의 공동 대응을 촉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 등의 위협에 맞서 사실상 유럽 전역에 핵우산을 펼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독일도 올해 950억 유로(153조3500억원)인 국방 예산을 2029년 1620억 유로(261조5200억원)로 70%가량 증액하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하며 이에 부합하는 생산력을 확보하라고 자국 방산기업들에 요구했다.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장관은 이날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무기 생산이 지연되고 있다. (기업들이) 더는 불평만 해서는 안 된다”며 “탄약과 드론, 전차를 생산하는 능력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무기 생산과 별도로 2030년까지 전차와 잠수함, 드론, 전투기를 구매할 계획도 수립 중”이라고 덧붙였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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