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를 되돌아보면 광장의 시간이었다. ‘아랍의 봄’부터 브라질, 홍콩, 칠레를 거쳐 한국의 촛불 시위에 이르기까지 세계 시민들은 분노와 희망을 안고 광장에 모였다. 저자는 “세계는 10년 동안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대규모 시위를 경험했다”면서 “그 빈도는 1960년대 전 세계에서 일어난 일련의 시위가 세운 기록을 넘어섰다”고 적는다. 광장의 역사는 성공했을까. 그렇지 않다. 책을 다시 인용하면, “대규모 시위의 요구 사항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열 개 국가 중 일곱 개 국가는 실패보다 더 나쁜 결과를 경험했다”. 2010년대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 세계 곳곳을 누비며 취재한 언론인 벤센트 베빈스는 이를 ‘광장의 역설’이라고 표현하며 진보세력의 도전과 실패의 원인을 고찰한다.
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는 브라질이다. 2013년 상파울루에서는 시 당국의 버스 요금 인상 철회를 요구하며 시위가 시작됐다. 시위를 주도한 ‘무상대중교통운동’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약간의 혼란”을 일으키기 위해 다양한 세력을 시위에 끌어들였다. 시위 규모는 점차 커져 100개 이상의 도시에서 200만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브라질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시위였다. 마침내 정부는 굴복했고, 원래 목표였던 버스요금 인상은 철회됐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무상대중교통운동’은 버스 요금 인상을 저지한 이후를 계획하지 않았다. 시위 이후의 공백은 극우 세력이 차지했다. 결국 좌파 ‘노동자당’의 지우마 바나 호세프 대통령이 2016년 탄핵당했고, ‘열대의 트럼프’로 불리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연이어 권력을 잡으며 10여년에 걸친 우파 정권이 시작됐다.
저자는 광장의 역사를 간직한 12개 나라에서 200명 넘는 사람들과 인터뷰했다. 질문은 정해져 있었다 “시위의 목표는 무엇이었나요. 목표를 이뤘나요.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면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저자가 발견한 이유는 조직을 거부하고 리더십을 부정하는 ‘수평주의’에 있었다. 기존 좌파의 중앙집중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성격을 비판하며 등장한 신좌파 운동에 뿌리를 둔 수평주의는 브라질 ‘무상대중교통운동’의 설립 원칙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수평적 운동이란 모두 지도자가 되거나 지도자가 존재하지 않는 운동이다.”
수평주의적 이상은 ‘모든 것을 불태우는 것’에는 유리했지만 모든 것이 불타 없어진 자리에 새로운 무언가를 채울 역량마저 함께 불태우고 말았다. 저자는 “우리는 대표성이 엘리트주의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대표성은 민주주의 본질”이라는 이집트의 인권운동가 호삼 바가트의 말을 인용하며 사회운동에서 조직과 대표성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조직은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도구의 사용을 거부한다면 우리는 진정 집을 지을 수 없다. 책임지기를 거부한다면, 권력을 타인에게 양도하는 것이다.”
책은 다른 한편에서 ‘한국은 어떠한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을 통해 2016년 촛불 시위에 대해서는 다소 우호적인 입장이지만 따끔한 질책도 빼놓지 않는다. 그는 “촛불 시위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좁은 의미의 성공을 거뒀지만, 시위가 지향했던 더 큰 목표는 이루지 못했다”면서 “악화일로의 불평등, 엘리트 중심의 권력, 부패, 무엇보다 ‘대의제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실패했다”고 지적한다. 책을 번역한, 라틴아메리카 사회운동을 연구하는 박윤주 계명대 교수도 “책에서 다룬 다른 사례에 비춰 우리 사회에 개혁의 열망을 실현할 만한 충분한 리더십이 있었는가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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