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에서 글로벌 1위 대만 TSMC와의 격차를 좀처럼 좁히지 못하고 있는 삼성전자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시장 확장기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TSMC가 치솟는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면 삼성과 인텔 등으로 기회가 넘어올 수 있다는 것이다.
산업연구원은 9일 발표한 ‘반도체 글로벌 지형 변화 전망과 정책 시사점’ 보고서에서 파운드리 시장에 대해 “매출 상승세와 단가 인상, 기타 수요산업 데이터로 추정컨대 향후 AI 반도체 성장세가 예상대로 실현될 경우 초과 수요 상태가 일정 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내다봤다. 다수 기관이 2026~2030년 데이터센터 반도체 시장 규모가 700조~3000조원 수준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하는 상황에서 TSMC가 수요 급증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봉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삼성전자가 처한 상황은 녹록지 않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적자를 수분기째 이어가고 있다. 파운드리 사업부는 올해 상반기 성과급을 지급하지 못했고, 매년 여는 파운드리 행사 규모도 축소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 1분기 기준 전 세계 파운드리 시장에서 삼성전자 점유율은 7.7%로, 1위 TSMC(67.6%)와의 격차가 더 벌어졌다. 양 사의 지난해 4분기 점유율 격차는 59% 포인트였는데, 올해 1분기 59.9% 포인트로 확대된 것이다. 3위인 중국 SMIC는 점유율을 5.5%에서 6.0%로 늘렸다. SMIC는 최근 3년간 매출 대비 시설투자 비율이 98%에 달할 정도로 정부의 막대한 지원을 받으며 생산 능력을 빠르게 확충하고 있다.
중국의 반도체 추격 속도가 빨라지면서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2위 자리까지 위협받는 상황이다. 중국이 한국의 범용 디스플레이 산업을 점령한 것처럼 파운드리에서도 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이준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중국 기업들의 추격 속도를 상정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며 “상식을 뛰어넘는 비용 구조와 자원 투입으로 기술격차 축소 기간은 물론 시장 내 물량 투입 사이클이 과거 주요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시장 기회를 엿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술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며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분사 요구가 잇따르는 만큼 가시적 성과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고 말했다.
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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