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고 감사위원 선임 시 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3%룰) 상법 개정안이 시행을 앞두게 되면서 해외 행동주의 펀드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에 대한 기업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재계에서는 개정 상법의 ‘독소’를 완화하는 차원에서 국내 기업 경영권을 해외 투기자본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포이즌필(독약조항), 차등의결권 등 제도 마련이 검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6일 재계에 따르면 주요 대기업들은 지난 3일 국회 문턱을 넘은 상법 개정안의 영향과 대응 방안 등에 대해 면밀히 분석 중이다. 특히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조항은 개정안 공포 즉시 시행인 만큼 컴플라이언스(준법 경영) 강화 차원에서 회사 내부규정을 정비하고 이사회 운영 개선 방안도 검토하는 분위기다.
다만 ‘3%룰’ 시행으로 대주주 의결권이 제한되면서 20여년 전 영국계 행동주의 펀드 소버린의 SK 경영권 탈취 시도가 되풀이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2003년 소버린은 5개 자회사가 각각 SK 지분을 2.99%씩 매입하는 식으로 총 14.99%를 확보하며 최태원 회장 퇴진 운동을 벌이다 2005년 지분 매각으로 9459억원의 차익을 거두고 철수했다. 3%룰은 1년여간 유예기간이 있지만, 재계에서는 3%룰 시행 전 포이즌필이나 차등의결권 같은 보완 장치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독약조항’이란 뜻을 담은 포이즌필은 적대적 M&A나 경영권 침해 시도가 발생할 경우 공격자를 제외한 주주들에게 시세보다 훨씬 싼 가격에 지분을 매입할 수 있도록 권리(신주인수선택권)를 미리 부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명박정부 때인 2010년 정부가 포이즌필을 담은 상법 개정안을 제출했지만, 야당 반발 등으로 처리되지 못하고 18대 국회 회기만료 폐기됐다. 22대 국회에서는 지난 3월 구자근 국민의힘 의원이 포이즌필을 담은 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차등의결권은 창업주나 경영진이 보유한 주식에 일반 주식보다 더 많은 의결권을 부여해 경영권을 보호하는 제도로 지난 2023년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법 조성으로 벤처기업이나 스타트업에 한해 시행되고 있다.
이들 제도는 대부분 미국과 일본 등 주요국에서 이미 시행되고 있는 경영권 방어 장치다. 다만 이런 제도에 대해 금융 시장 일각에서는 주주평등원칙에 위배되거나 무능한 경영진 교체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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