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통상 압박이 연일 거세지면서 ‘비관세 장벽’ 완화 요구에 대한 한국 정부의 결단의 시간도 다가오고 있다. 비관세 장벽은 관세 외 수단으로 해외 수입을 규제하는 조치를 의미한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소고기·감자 등 농축산물의 위생·검역 장벽과 디지털·의약품 규제 등을 한국의 대표적 비관세 장벽으로 거론하며 압박해왔다.
새 정부 출범 전후로 한·미 간 관세 협의가 수차례 이어졌지만, 통상 리더십 부재와 장관급 인선 지연으로 비관세 장벽에 대한 정부안은 답보 상태에 머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 관세(한국 25%) 부과를 재차 유예할 경우 한국도 진용을 재정비할 여유를 벌 수 있다. 그러나 9일 상호 관세가 발효되면 한·미 정상회담 등 양국 간 담판 이전까지 관세에 따른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2일 관계부처 취재를 종합하면 미국은 그간의 한·미 장관급 협의와 3차에 걸친 기술협의에서 무역수지 개선과 함께 비관세 장벽 해소를 집중적으로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비관세 장벽 중에선 디지털 통상 규제 완화를 강하게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월 말 공개된 USTR의 무역장벽보고서(NTE)는 한국 정부의 ‘경쟁 규제’ 및 ‘위치 정보 데이터 반출 제한’ ‘해외 기업 망사용료 부과’ ‘개인정보 국외 이전 제한’ 등을 대표적 디지털 통상 규제로 거론했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이 그간 제기해온 비관세 장벽 문제가 대부분 논의 테이블에 올랐지만 그 중에서도 디지털 규제에 대한 개선 요구가 거셌다”고 전했다.
한·미 양국이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해 무역수지 불균형을 단기간에 해소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비관세 장벽 완화는 미국이 얻어낼 수 있는 현실적 카드로 꼽힌다. 또다른 정부 관계자는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미국이 (미국산 제품의) 수입을 늘리는 방안을 가장 많이 요구하지만 한계가 있다는 걸 본인들도 알고 있다”면서 “타국의 불공정한 비관세 장벽으로 이런 결과가 초래됐으니 이번 기회에 전반적으로 다시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다소 이념적인 목표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송영관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한국도 내줄 건 내주고 받을 건 받으며 미국과 접점을 찾는 것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했다.
다만 한국은 지난해 말부터 정치적 혼란이 이어지며 범정부적 차원의 비관세 장벽 논의가 더뎠다. 빅테크 등 플랫폼 규제, 위치 정보 데이터 반출 제한 등 민감한 사안을 결정할 공정거래위원회·국토교통부 등은 새정부 들어 아직 장관 인선도 이뤄지지 못했다. 경제정책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후보자도 인사청문회를 거쳐 본격적인 진용을 구축하기까진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통상 당국 핵심 관계자는 “한국이 미국에 제시할 카드를 확정하려면 부처 간 협의를 통해 최종안을 도출할 리더십이 빠르게 확보돼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 양민철 신준섭 기자 listen@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