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상법 개정이 임박하면서 교환사채(EB)를 발행하거나 주요 사업부를 인적 분할해 중복상장을 추진하는 상장사들이 늘고 있다. 이사의 충실 의무를 회사에서 회사와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이 상법에 담기면 ‘최대주주에게는 이익이지만 소액 주주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할 수 없어 그 전에 꼼수를 쓴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태광산업은 지난 27일 이사회에서 자사주 전량(지분율 24.41%)을 교환 대상으로 하는 3186억원 규모 EB 발행을 의결했다. EB 투자자는 약속한 원리금을 만기까지 받거나 추후 자사주로 교환해 받을 수 있다. 2대 주주 트러스톤자산운용과 소액주주는 이 결정이 개정되는 상법의 시행을 앞두고 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 주주 보호 정책을 회피하려는 꼼수라고 반발하고 있다. 트러스톤은 “자사주를 교환 대상으로 하는 EB는 사실상 3자 배정 유상증자와 같은 효과가 있다”며 “기존 주주의 이익을 심각하게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상법 개정안은 국회 통과 이후 대통령 공포하면 유예 없이 즉시 시행될 예정이다.
회사가 보유한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제3자에게 넘기게 되면 의결권이 생긴다. 우호 세력에 EB를 발행해 넘기게 되면 회삿돈으로 최대주주 경영권을 공고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태광산업은 EB 발행 공시에 거래 상대방에 대해 “추후 확정시 정정 공시될 예정”이라고 밝혀 상법 개정을 앞두고 급하게 EB 발행을 결정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이날 금융감독원은 태광산업의 EB 발행 신고서에 정정명령을 부과하며 제동을 걸었다. 발행 상대방 등에 대한 중요한 누락이 있다는 판단이다.
태광산업은 교환사채 발행 논란과 관련해 “회사의 존립과 직원들의 고용안정을 위해 꼭 필요한 조치”라며 “교환사채 발행을 통해 조달하는 3186억원은 사업구조 재편에 투입할 예정”이라고 주장했다. 태광산업은 최근 화장품 기업 애경산업 인수전에 뛰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태광산업은 이날 사업구조 재편을 위해 내년까지 1조5000억원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스킨부스터 ‘리쥬란’으로 유명한 코스닥 상장사 파마리서치의 인적분할도 주주 권익을 침해하는 의사결정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 파마리서치는 지난 13일 인적분할을 통해 지주회사 ‘파마리서치홀딩스’와 사업회사 ‘파마리서치’를 증시에 중복 상장하겠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최대주주인 정상수 파마리서치 이사회 의장 등은 신설법인 지분을 지주회사에 넘기고 지주회사 지분을 받게 되면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다. 지주회사와 자회사의 중복상장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도 꼽힌다.
상법 개정에 대한 기대에 이날 증시에서는 지주사인 한화(15.38%) SK(9.54%) LS(7.11%)의 주가가 급등했다.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0.58% 오른 3089.65에 마감했다. 장중에는 2.01% 오른 3133.52으로 연고점을 다시 썼다.
이광수 이종선 기자 g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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