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철에 많다는 벌독 원인 급성 쇼크, 7월부터 급증한다

가을철 벌초 시즌이 되면 벌에 쏘여 목숨을 잃었다는 뉴스를 종종 접한다. 하지만 벌쏘임에 의한 급성 쇼크, 즉 ‘아나필락시스’는 7월부터 급증하는 것으로 나타나 예방과 대비가 필요하다. 대한천식알레르기학회는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여름철 벌독 아나필락시스 주의를 당부하고 나섰다. 질병관리청은 세계 알레르기 주간(6월 29일~7월 5일)을 맞아 ‘아나필락시스, 알면 생명을 지킬 수 있다’는 대국민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아나필락시스는 알레르기 원인 물질에 노출된 후 갑자기 발생하는 중증 과민반응이다. 벌이나 개미 등 곤충 독, 식품(우유·땅콩·계란 등), 해열진통제·항생제·조영제, 천연 고무(라텍스), 운동, 온도 변화 등이 중증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특히 등산이나 골프, 농삿일 등 야외활동이 많은 요즘엔 벌쏘임에 의한 아나필락시스를 경계해야 한다. 더구나 과거 벌에 쏘인 후 전신 두드러기 등 아나필락시스 증상을 경험한 적 있는 사람은 반드시 ‘에피네프린 자가 주사기(일명 에피펜)’를 처방받아 항상 휴대하며 정기적으로 사용 기한을 확인하고 사용법을 숙지할 필요가 있다.


지난 30일 학회 보고서에 따르면 2012~2016년 강원도 등 7개 지역병원 응급실을 방문한 아나필락시스 환자를 월별로 살펴본 결과 벌독에 의한 사례는 4월부터 조금씩 증가했으며 7~9월에 집중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5~10월 아나필락시스 응급실 방문의 가장 많은 부분을 벌독이 차지했다.

아나필락시스는 원인 물질에 노출된 뒤 수 분에서 수 시간 내에 반응이 시작되고 빠르게 진행된다. 환자의 90%에서 전신 두드러기와 발진, 입술·눈 주변이 붓는 혈관부종 등 피부 증상이 나타난다. 또 호흡곤란이나 목안이 붓는 등 호흡기 증상(70%), 혈압저하·어지러움·실신 등 심혈관 증상(최대 45%), 심한 복통·구토·설사 등 소화기 증상(30% 이상)도 동반될 수 있다.

정이영 경상대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교수는 학회 유튜브에서 “벌에 쏘인 뒤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고 가슴이 답답하거나 숨을 못 쉴 것 같이 느껴진다면 단순 벌쏘임 통증이 아닌, 아나필락시스를 의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로 야외활동 중에 발생해 즉각적인 치료와 대처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또 증상이 빠르게 나타나서 주변에 병원이나 적절한 도움을 받기도 쉽지 않다. 2019년 대한내과학회지 발표 논문에 의하면 벌독 아나필락시스는 매년 증가 추세이며 도시보다 시골 지역에서 배 정도 많이 발생하는 거로 나타났다.

자신이 벌독 알레르기 위험이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벌에 쏘인 부위가 아닌 다른 부위에 두드러기나 발진 등의 증상이 나타난 경우 아나필락시스 위험이 있다고 조언한다. 또 과거 아나필락시스로 전신 증상을 경험했다면 꼭 알레르기 전문의 진료를 통해 위험도를 평가받고 향후 발생에 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까지 벌에 쏘였을 때 아나필락시스가 발생할지 예측할 수 있는 검사는 없다. 시중의 알레르기 혈액검사에서 벌독 항원에 대한 양성 반응이 나오더라도 반드시 실제 증상이 유발된다는 것은 아니므로, 예방적으로 이런 검사를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아나필락시스 예방을 위해선 원인 물질을 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또 갑자기 상황이 닥쳤을 경우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에피네프린 자가 주사’의 신속한 사용이다. 펜처럼 생겼다고 해서 ‘에피펜’으로 불린다. 급한 상황에서 바지를 입은 채로 바깥 허벅지에 찌르고 10초간 유지해야 약물이 주입된다. 의사 진단과 처방 시 사용법과 사용 기한 등을 듣고 숙지해야 한다. 정 교수는 “경우에 따라 알레르기가 급격히 진행되면 에피펜을 맞기도 전에 아나필락시스 증상이 나타나고 실신할 수도 있다. 벌쏘임 상황을 대비해 주변 동료에게 미리 자신의 벌독 알레르기와 에피펜 사용법을 알려 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나필락시스 증상이 나타나거나 의심될 경우 편평한 곳에 눕힌 뒤 에피펜 주사를 즉시 사용하고 119를 불러 신속하게 응급실로 이송해야 한다. 질병청 관계자는 “에피펜을 사용해 일시적으로 증상이 호전됐다 하더라도 2차 반응이 올 수 있으므로 환자가 빨리 응급실을 방문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밝혔다.

아나필락시스로 인한 사망 위험을 줄이려면 천식과 비염 같은 호흡기 알레르기 질환의 동반 여부를 확인하고 복용하는 약제 중 조정이 필요한 것이 있는지도 점검해야 한다. 권재우 강원대병원 알레르기내과 교수는 “특히 천식을 앓고 있는 경우 아나필락시스로 인한 호흡곤란 등의 증상이 훨씬 심각하고 사망 위험도 올라간다. 평소 천식 관리에 더 철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야외 활동 시 벌에 쏘이지 않으려면 벌을 자극할 수 있는 향이 진한 화장품이나 향수 사용을 자제하고 당도 높은 음식·음료수는 섭취를 자제한다. 긴 옷이나 신발을 착용해 노출을 최소화하고 검정 혹은 갈색 옷은 피하고 밝은 옷을 입도록 한다. 처방받은 에피네프린 자가 주사기는 실온에 보관하며 유통 기한(대개 1년)이나 파손·변형 여부를 항상 점검하고 필요 시 재처방받아 교체해야 한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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