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 콩팥병 급증에도… 환자 절반 “복막투석 들어본 적 없다”

대한신장학회에 따르면 국내 만성 콩팥병 환자 증가율은 세계 1위, 신규 환자 발생률은 세계 2위 수준이다. 고령 인구와 당뇨병·고혈압 등 만성질환의 급속한 증가 탓이 크다. 2015년 17만여명이던 만성 콩팥병 환자는 2023년 32만여명으로 배 가까이 늘었다. 만성 콩팥병은 체내 노폐물 제거 등의 콩팥 기능이 떨어지는 질환으로 손상 정도에 따라 1~5단계로 나뉜다.


콩팥 기능이 15% 미만으로 남아있는 마지막 5단계인 ‘말기 콩팥병’ 유병 인구가 최근 10년간 세계에서 가장 가파른 증가세를 보인다. 그에 따른 건강보험 재정 부담 역시 급격히 커지고 있다. 2010년 5만8000여명이던 말기 콩팥병 환자는 2023년 13만7000여명으로 약 2.3배 증가했다. 말기 콩팥병은 콩팥 기능 회복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에 생명을 이어가려면 투석 치료나 콩팥 이식을 받아야 한다. 콩팥 이식은 뇌사자 등 장기 기증이 필요해 이식까지 대기 시간이 오래 걸리며 그사이 투석 치료가 환자 생명 유지를 위한 필수 의료라 할 수 있다.


투석은 병원에 와서 받는 혈액투석과 집에서 할 수 있는 복막투석 두 가지가 있다. 2023년 기준 투석이 필요한 말기 콩팥병 환자는 약 11만에 육박하며 10년 안에 17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른 건강보험 지출은 약 3조원에서 2033년까지 배 증가해 5조~6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이런 말기 콩팥병 환자의 의료비 부담을 낮추고 건보 재정을 효율적으로 운용하는 대안으로 복막투석의 활성화를 적극적으로 권고하고 있다.

복막투석은 혈액투석처럼 잦은 병원 방문 필요 없이 사는 곳 어디에서나 할 수 있어 환자 중심의 재택의료로 꼽힌다. 또 직장생활이나 학업, 여행 등 일상생활 유지가 용이하다.

경제활동 비율을 보면 복막투석은 61%로 혈액투석(34%)보다 높다. 심혈관계 부담이 적고 남은 콩팥 기능 보존에 유리하며 사망 위험 등 치료 예후도 훨씬 더 낫다는 게 전문가 의견이다. 아울러 복막투석 환자의 1인당 연간 의료비는 약 2200만원으로 혈액투석 대비 800만원 가량을 절감할 수 있는 등 각종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국내에선 2023년 기준 95%가 혈액투석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복막투석은 4.5%에 불과하다. 신장학회가 복막투석을 적극 권장하고 있음에도 10년째 지속 감소하는 추세다. 2012년 13.5%였던 복막투석 비율은 3분의 1로 쪼그라들었다. 한국의 복막투석 이용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신장학회 총무이사인 이정표 서울시보라매병원 신장내과 교수는 최근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와 공동 개최한 ‘복막투석 활성화 과제’ 심포지엄에서 “이대로 간다면 5~10년 뒤에는 복막투석 비율이 2%대까지 감소하고 끝내는 사라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학회는 근본 원인으로 복막투석에 대한 정보 부족, 진료 수가 및 전담 인력 부족, 투석 방법 선택을 위한 교육 부족, 정책적 지원 미흡 등 전반적인 미비점을 지적했다.

이 교수는 “복막투석에 대한 환자의 정보 접근이 제한적이고 치료 전 의사 결정 과정에 충분한 정보와 교육을 받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실질적인 ‘공유 의사결정(SDM)’ 체계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부분의 환자는 복막투석에 대한 인지가 부족한 채로 치료법을 결정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 의학바이오기자협회가 최근 20세 이상 1184명(일반인 768명, 환자·보호자 416명)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를 보면 일반인 73%는 물론 환자 52%도 ‘재택 복막투석에 대해 들어본 적 없다’고 답했다.

전담 간호사 등 인력과 공간이 부족하고 교육 수가(서비스 제공 대가)가 충분하지 않아 복막투석 교육을 제공하는 병원이 많지 않은 것이 문제다. 투석 치료를 많이 하는 개원가 등에서 현실적으로 복막투석을 권유하거나 지속 관리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것이다.

정부는 2019년부터 복막투석 환자 재택관리 시범사업을 2차에 걸쳐 시행 중이다. 지난 5월 이뤄진 사업 평가에 따르면 재택 복막투석으로 전체 의료비, 입원 의료비, 의료 이용이 감소하는 등 긍정적인 성과가 확인됐다. 다만 실제 의료 현장에서는 교육 상담료가 외래 진료에만 적용되는 등 여러 문제점도 노출됐다. 정부는 올해 말까지 시범사업을 진행한 뒤 본 사업 전환 여부를 결정한다는 계획이다.

학회는 복막투석 재택 관리 시스템의 실효적 구축을 위해 재택투석 관리료 신설, 필수 의료로서 운영 기반 지원, 전문인력 확보 및 지원(지역사회 통합 돌봄 지원 강화) 등의 필요성을 제안했다. 황원민 건양의대 신장내과 교수는 23일 “복막투석 재택 관리는 초고령사회로 접어든 우리나라에서 의료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만성질환 관리 모델”이라고 강조했다. 학회는 복막투석 활성화로 연간 약 3000억원의 투석 의료비를 절감할 것으로 추산했다.

황 교수는 “홍콩 대만 미국 싱가포르 일본 등 해외 여러 국가에서도 복막투석의 임상적, 사회·경제적 가치를 인정하고 적극 활용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갖추고 있다”고 덧붙였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