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한국 사회는 생명 경시 풍조 심화와 입법 공백이라는 혼란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고 생명 존중 문화를 확산하기 위한 프로라이프(생명존중) 운동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성산생명윤리연구소장인 홍순철(54) 고려대안암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태아 생명 보호는 다음세대를 지키는 일이며 대한민국의 미래와 교회의 생존이 달린 절박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헌재 결정, ‘낙태 합법화’ 아니다
지난 15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안암병원 연구실에서 만난 홍 교수는 2019년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낙태 합법화’로 오해되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헌재 결정은 태아를 우리 미래 사회의 구성원이자 보호해야 할 가치가 있는 생명이라고 동시에 선언했습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했다는 점만 부각할 게 아니라 태아 생명의 가치를 인정한 부분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홍 교수는 현재 상황을 “기존 낙태죄가 효력을 잃고 새로운 입법이 이뤄지지 않은 ‘입법 공백 상태’”로 규정하면서 “국회와 정부가 진보 보수를 떠나 태아 생명 보호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진보 정권이라 해서 생명의 가치를 다르게 볼 수 없으며 다음세대에 대한 보호는 정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역설했다.
홍 교수는 새 정부가 지난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만삭 낙태’ 등 불법적인 낙태를 막고 태아 생명을 보호하는 본연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현실적인 입법 대안으로는 태아 심장 박동이 확인되면 낙태를 금지하는 ‘심장박동법’을 제시했다. 그는 “이는 태아 생명을 광범위하게 보호하면서도 헌재가 언급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일정 부분 수용하는 절충안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태아 보호는 국가와 사회의 책무
일각에서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이 충돌한다는 주장에 대해 홍 교수는 “대결 구도 자체가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이런 주장은 (강간으로 임신할 경우 등) 임신과 양육 현실과 거리가 있는 일부의 주장이며 이를 일반화해선 안 됩니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임신부가 예상치 못하게 겪는 둘째 또는 셋째 임신, 약물 노출로 인한 산모의 낙태 고민 등 일반적인 가정과 임신부가 겪는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이들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가정을 회복하며 생명을 유지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는 “여성의 권리와 태아 생명권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며 다음세대 보호는 진보와 보수를 떠난 공동의 목표”라고 역설했다.
산부인과 의사로서 홍 교수는 낙태가 여성에게 미치는 신체적·정신적 어려움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2022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인공임신중절 실태 조사’에 따르면 여성이 낙태 후 자궁유착증, 습관성 유산 등 신체적 증상을 겪는 경우는 7.1%, 죄책감과 자살 충동 등 정신적 증상을 경험한 경우는 59.5%로 조사됐다. 홍 교수는 이 통계를 인용하며 “결국 생명을 지키는 결정은 여성 자신의 인생 전체를 바꿀 수 있는 중대한 일”이라고 말했다.
두려움 해소 위한 상담·지원 절실
홍 교수는 낙태를 선택하는 주된 원인으로 두려움을 꼽았다.
“경제적 어려움, 태아 기형에 대한 걱정, 결혼 전 임신에 대한 사회적 시선 등 다양한 두려움이 낙태로 이어집니다.” 그는 이러한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전문가의 긍정적 상담과 정보 제공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임신 중 금기 약물 복용 시 산모에게 ‘기형아 발생 확률이 2%’라는 사실보다는 ‘태아가 정상일 확률 98%’라고 전달하며 불안 대신 축복을 바라보도록 돕는 것이다. 그는 또한 “이미 우리 사회는 장애 아동과 함께 살아가는 분위기로 가고 있다”며 인식 개선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그가 몸담은 성산생명윤리연구소는 이러한 생명 존중 문화 확산을 위해 매달 ‘성산생명콜로키움’ 오픈 강좌를 열고 있다. 또한 ‘서플(SUFL·Stand Up For Life)’이라는 태아 생명 보호 활동가 양성 과정을 운영하며 전문가를 육성하고 있다.
그는 “프로라이프 운동이 단순 입법 활동에 그치지 않고 지역사회와 교회를 중심으로 일어나야 한다”며 “태아 생명 보호 운동이야말로 건강한 가족을 세우는 운동이다. 건강한 가족 개념이 바로 설 때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마지막으로 홍 교수는 정부와 국회, 그리고 교회와 국민을 향해 “태아 생명 보호는 특정 종교나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미래가 걸린 일”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대부분의 낙태가 경제적 어려움, 양육 부담, 정보 부족 등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지적한 그는 “젊은 부부들이 경제적으로 안정될 때까지 지자체, 교회, 양가 부모가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어려움에 부닥친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축복을 기쁘게 받자’는 긍정의 상담과 실질적 도움이 필요하다”며 “태아의 생명을 지키는 것은 한 개인의 인생을 넘어 우리 사회 전체를 살리는 길”이라고 말했다.
글·사진=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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