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현대과학 갈등 드러낸 상징적 사건… 조선에도 영향

선교 초기 기독교는 조선 사회에서 가장 지성적이며 진보적인 집단이었다. 선교사들은 서양 의학과 근대식 교육을 전수한 양대인(洋大人)이었고 조선의 진보적 유학자들은 서양의 종교와 과학을 앞다퉈 받아들였다. 근대화 중심에는 기독교 복음이 있었고 그 주위를 과학적 세계관과 민주주의가 감싸고 있었다. 이를 전파한 세력이 바로 미국 선교사들이었다. 조선 민중은 기독교, 과학, 민주주의, 그리고 미국을 하나의 새로운 세계관으로 받아들였다. 유교, 성리학, 그리고 구질서가 조선을 망가뜨렸다면 새로운 질서가 새 시대를 이끌어야 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한 몸처럼 여겨졌던 기독교와 근대 과학은 언제, 어떻게 균열을 일으켰을까. 그리고 가장 지성적이었던 기독교인이 어떻게 주류 과학계에서 밀려나 반지성주의로 몰리게 되었을까. 문제의 핵심은 바로 진화론이다.

1859년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간되자 유럽 지성계에 큰 충격을 줬고 과학계와 신학계에서 대논쟁이 촉발됐다. 19세기 말 지성적으로 다소 뒤처졌던 미국에도 그 충격파가 전해지면서 마침내 대중에게까지 퍼졌다. 진화론에 대한 미국 기독교의 대세는 바로 근본주의였다. 성경은 오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성경이 가르치는 창조론은 진화론과 양립할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꼭 100년 전인 1925년 원숭이 재판(Monkey Trial)으로 더 알려진 스콥스 재판은 그 정점이었다. 이 재판은 전통적 기독교 신앙과 현대 과학의 갈등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며 기독교 진영의 과학 이해 부족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반지성적 근본주의가 미국 교회의 주류가 됐고 소위 창조과학이 복음주의 교회에서 널리 용인됐다. 신앙과 현대 과학을 ‘하늘의 쌍둥이 자매’로 보고 이 둘을 조화시키려 한 미국 프린스턴신학교의 찰스 하지, 벤저민 B 워필드 같은 이들도 있었으나 아쉽게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조선에서도 진화론의 영향력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한국 선교가 시작된 지 30년이 지난 1910년대 후반부터였다. 선교 초기 기독교와 과학이 동일시되던 시기는 지나가고 이제 기독교와 근대 과학의 뿌리가 다르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 선두주자로 나선 사람은 춘원 이광수였다. 그는 1917년 ‘청춘’이라는 잡지에 “금일 조선 야소(예수)교회의 결점”이라는 글을 기고했다. 춘원은 글에서 당시 조선 기독교 지도자들이 “현대 문명의 정신과 현대 사조의 본류와 현대 문명과 종교와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미신과 교회 중심주의에 빠졌다”고 비판했다. 초자연성을 부정하는 현대주의 입장에서 전통적 기독교를 비판한 최초의 글이었다.

1920년대 조선에는 일본과 중국 등지의 유학생을 통해 기독교의 초자연성을 비판하는 사조가 유입됐다. 하나는 계몽사상이었고 다른 하나는 공산주의였다. 이 둘은 진화론을 과학적 진리로 받아들이며 기독교를 봉건주의의 잔재로 취급한다는 점에서 일치했다. 천당과 동정녀 탄생, 성경의 무오류와 같은 낡은 미신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며 당시 조선 기독교계를 휩쓸던 김익두 목사의 신유(神癒)를 혹평했다.

진화론을 앞세운 현대 과학의 도전에 맞서 전통적 기독교 신앙을 수호하려 했던 한국교회의 대표적 신학자는 박형룡(1897~1978) 박사였다. 그는 자신의 학위논문에서 자연과학이 발견한 사실(생물학·지질학)과 그 사실로부터 추론한 이론(진화론)을 구분함으로써 신앙과 과학이 공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창세기 1장의 ‘날’이 지질학적 시대를 가리킬 수 있고 노아 홍수가 국지적이었을 수도 있으며 유신 진화론의 가능성도 인정했다. 전형적인 프린스턴신학교의 입장이었다.

놀라운 것은 박형룡이 귀국한 뒤 활동하면서 과학과 신앙의 조화를 추구하는 노력을 버리고 근본주의의 길을 택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유신 진화론을 반대하고 창세기 1장의 ‘날’을 24시간으로 해석했으며 주류 과학계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창조과학만이 성경적 과학이라고 주장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이해하려는 단순한 신앙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것일까.

1925년 스콥스 재판 이후 100년 동안 미국에서는 신앙과 과학을 조화시키려는 과학철학과 신학적 노력이 이어졌다. 그러나 일단 근본주의적 반지성의 길로 들어선 복음주의자들은 여전히 이원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뒤를 바싹 쫓는 한국교회도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이러는 사이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이나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 같은 진화론적 담론이 젊은 지성인을 교회로부터 빼앗아 가고 있다. 교회는 반지성주의라는 낙인이 찍혀 공적 담론의 장에서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다.

과학과 신앙의 관계는 결코 간단히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한국교회가 진화론을 포함한 현대 과학을 배척할 수만은 없다. 이제라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대화의 문을 열어야 한다. 기독교는 진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장동민 교수(백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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