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악기 역대 최고가 413억원… 끝없는 스트라디바리우스 사랑

지난 2~3일 베를린 방송교향악단이 아시아 투어 일환으로 10년 만에 내한했다. 블라디미르 유롭스키가 지휘한 베를린 방송교향악단의 협연자는 대만계 호주 바이올리니스트 레이 첸. 국내에서도 인기가 높은 레이 첸은 예후디 메뉴힌 콩쿠르와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한 기량에 더해 수려한 외모, SNS를 통해 팬들과 소통하는 유연함 등으로 유명하다.

2022년부터 첸의 소개글에 추가된 것은 1714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돌핀 사용이다. 명품 현악기 중에는 과거 소유주의 이력이나 특별한 에피소드가 이름에 붙는 경우가 많은데, 스트라디바리우스 돌핀은 1860년대 영국의 악기 딜러 조지 하트가 바이올린의 모양과 색깔이 돌고래 같다며 지은 것이다. 이후 소유주가 바뀌어도 이 이름은 계속 사용됐다.


클래식 음악을 모르는 사람들도 한번은 들어봤을 스트라디바리우스는 17~18세기 이탈리아 북부 크레모나 지역에서 스트라디바리 가문이 만든 현악기를 지칭한다. 당시 악기 라벨에 제작자와 지명을 라틴어로 썼는데, 스트라디바리의 라틴어명이 스트라디바리우스다. 오늘날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악기를, 스트라디바리는 제작자를 가리킬 때 각각 사용한다. 참고로 세간에서 말하는 명품 현악기는 스트라디바리 가문과 함께 16~18세기 ‘바이올린의 고향’ 크레모나에서 활동했던 아마티 가문, 과르네리 가문에서 만들어진 것을 가리킨다. 이들의 가격은 보관상태, 음질, 이력 등에 따라 달라지지만 수백만 달러 이상인 경우도 적지 않다.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1644~1737)와 두 아들이 만든 현악기를 포함하지만, 대체로 93세까지 장수한 아버지 스트라디바리가 만든 것을 지칭한다. 젊은 시절부터 섬세한 음질과 정교한 세공으로 명성을 날린 스트라디바리는 평생 1100여 대를 만들었다. 특히 ‘스트라디바리 황금기’로 꼽히는 1700~1725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이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와 비교해 과르네리 가문에선 ‘과르네리 델 제수’로 알려진 주세페 과르네리가 1730~1744년 사이에 만든 것이 탁월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존하는 스트라디바리우스는 바이올린 550여 대, 첼로 50여 대, 비올라 12대를 포함해 650대 정도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100여대가 실제로 연주자의 소유이고, 나머지는 소장용으로 보관되다가 가끔 연주자에게 대여된다. 스트라디바리우스 돌핀은 일본음악재단이 일본 바이올리니스트 스와나이 아키코에게 2000년부터 2019년까지 20년간 대여했다. 그리고나서 이 악기를 대여받은 인물이 바로 레이 첸이다. 스트라디바리우스 돌핀은 음색이 좋은 것으로 알려졌던 만큼 레이 첸은 SNS에 자신이 대여받은 기쁨을 올리기도 했다.



스트라디바리우스 돌핀은 일본음악재단이 2000년 사적 거래에서 600만 달러에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명품 악기의 희소성과 수집가의 투자 심리 등이 맞물려 가격이 계속 올라가기 때문에 지금 거래된다면 훨씬 비쌀 수밖에 없다. 실제로 근래 경매에서 거래된 스트라디바리우스와 비교하면 짐작할 수 있다.

지난해까지 공개된 바이올린 최고가는 2012년 경매에서 낙찰된 1741년산 과르네리 델 제수 비외탕의 1600만 달러로 추정된다. 당시 익명의 구매자가 낙찰가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언론의 취재로 2011년 경매에서 역대 최고가였던 1721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레이디 블런트의 1590만 달러보다 미세하게 위라는 것이 알려졌다. 그리고 2022년 1714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다 빈치·엑스 세이델이 1534만 달러에 낙찰되며 당시 기준으로 역대 3위에 올랐고, 지난 2월 1714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요하임-마가 1125만 달러(155억 원)에 낙찰되며 역대 4위에 올랐다. 그런데, 지난 3월 1715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배런 누프가 역대 최고가인 2300만 달러(316억 원)에 판매됨에 따라 앞선 1~4위가 하나씩 뒷순위로 물러났다. 스트라디바리우스 배런 누프는 과거 소유주 가운데 현악기 수집가였던 요한 누프 남작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1991년 미국의 악기 수집가 데이비드 L. 풀턴이 275만 달러에 구입해 보유하다가 이번에 익명의 개인에게 팔았다.



그런데, 지난 4월 현악기 전체를 통틀어 가장 높은 판매 가격이 나왔다. 1690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토스카나 메디치 콘트랄토 비올라가 3000만 달러(약 413억 원)를 기록한 것이다. 이탈리아 토스카나 대공 페르디난도 데 메디치를 위해 만들어진 이 비올라가 이렇게 비싼 것은 스트라디바리우스 비올라의 수가 워낙 적기 때문이다.

스트라디바리우스 토스카나 메디치 콘트랄토 비올라는 부유한 미국 음악 교육자인 캐머런 베어드가 1957년 구입했다. 베어드의 사망 이후 가족법인의 소유가 됐다가 1977년 미국 의회도서관에 장기 대여됐다. 올 들어 풀턴이 스트라디바리우스 배런 누프를 판매한 데 따른 2000만 달러와 베어드의 가족이 1000만 달러를 기부함으로써 미국 의회도서관의 소유가 됐다. 베어드 가족법인이 비싸게 팔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2014년 미국 소더비 경매에 1719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맥도널드가 최소 경매가 4500만 달러에 나왔던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싸게 판매한 것을 알 수 있다. 2014년 경매 당시 유찰되긴 했지만 스트라디바리우스 비올라의 희소성이 얼마나 높은지 보여준다.


그런데, 스트라디바리우스나 과르네리 델 제수의 천문학적 가격은 과연 타당한 것일까. 이들 악기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행해지면서 나무의 재질, 화학 방부제, 니스칠 등이 음색을 좋게 만들었다는 실험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연주자는 안대를 낀 채 연주하고, 음악에 식견 있는 청중은 무작위로 소리를 듣는 실험에서 연주자와 청중 모두 명품 악기와 현대 악기를 구분하지 못했다. 오히려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현대 악기가 음색과 음향 방사도 등에서 더 우수하다고 선택한 사례가 많았다.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 크리스티안 테츨라프의 경우 현재 활동 중인 독일 제작자 슈테판-페터 그라이너가 만든 바이올린을 선호한다. 그라이너는 나무연대측정, 바니쉬(니스) 분자분석 등 현대과학을 바이올린 제작에 활용한 선구자다. 지금 주문해도 5년 후에나 인도받을 수 있는 그의 악기는 테츨라프 이외에 바이올리니스트 이고르 오짐이나 알반베르그 4중주단 등도 사용하고 있다. 그라이너의 바이올린은 2014년 경매에서 10만 달러(약 1억4000만원)가 조금 안되는 가격에 거래된 것이 최고가고, 대체로 5만 달러 안팎에 판매된다.

테츨라프는 2013년 잡지 ‘스트라드’와의 인터뷰에서 17~18세기 바이올린의 전범을 만든 이탈리아의 장인들의 위대함을 언급하는 동시에 현대 장인들의 뛰어난 기량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현대 악기와 명품 악기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점도 꼬집었다. 게다가 스트라디바리우스가 300년 이상 되면서 원목의 심한 건조로 음색이 점점 나빠진다는 연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스트라디바리우스 등 명품 악기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 악기의 희소성과 함께 브랜드의 상징성 그리고 투자 가치가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도 이들 악기가 경매에 나올 경우 최고가 경신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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