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노쇼

Է:2025-05-27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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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주 논설위원


요즘 일상에서 자주 쓰이는 노쇼(No-Show)라는 말은 1950~60년대 미국 항공산업에서 유래했다. 원래는 항공권을 예약하고도 정작 탑승하지 않은 승객을 지칭하는 전문 용어였지만, 지금은 호텔 공연 식당 병원 미용실 등 예약 기반의 모든 서비스 업계로 확산됐다.

서구사회에서 예약은 곧 계약이다. 정당한 사유 없이 예약만 해두고 나타나지 않는 노쇼는 심각한 무례로 여겨진다. 타인의 시간과 자원을 침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반복되면 이용 정지나 벌금 부과는 물론, 예약 플랫폼에서도 퇴출당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아직 예약을 단순한 의향 표명 정도로 여기는 인식이 남아 있다. ‘예약을 했지만 안 가면 그만’이라는 생각, 특히 익명성이 강한 온라인 예약 시스템에서는 책임감마저 희미해진다. 당사자에겐 가벼운 일이겠지만 자영업자에게는 큰 상처로 돌아온다.

특히 요즘처럼 자영업자들이 어려운 시기에 단체 예약은 가뭄의 단비 같은 일이다. 그런데 식당에 숙성회 24인분을 주문해놓고 나타나지 않거나, 펜션에 30명을 예약한 뒤 연락 없이 오지 않는 등의 피해 사례가 넘쳐난다. 이들 업주는 재료 준비와 청소에 쏟은 시간과 비용은 물론 기대했던 수익까지 날려야 한다. 안타까운 점은 노쇼로 인한 피해에 마땅한 구제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최근엔 노쇼가 단순한 예약 불이행을 넘어 고액 사기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특히 대선을 앞두고 후보 캠프나 공공기관을 사칭한 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후보 캠프를 사칭해 단체 예약을 하고, 고급 양주를 대신 사주면 음식값에 웃돈을 얹어 주겠다며 업체를 알려줘 2400만원을 송금하게 한 뒤 잠적한 사건도 발생했다. 정당 로고가 적힌 허위 명함과 공문, 선결제 유도는 전형적인 사기 수법이다. 범죄 조직은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활동해 수사도 쉽지 않다. 노쇼는 더 이상 사소한 일이 아니다. 우리가 지키지 못한 예약이 누군가의 삶을 무너뜨릴 수 있다. 신뢰 사회는 작은 약속을 지키는 것부터 시작된다.

한승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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