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쓰기는 ‘욕망’ 혹은 ‘가려울 때 긁는 것’과 같습니다. 아주 강한 내면 충동의 결과며, 이런 충동이 일어나면 저로서는 그걸 표출해야만 합니다.”
판타지 소설 ‘나니아 연대기’ 시리즈와 소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의 저자 CS 루이스(1898~1963)가 작법에 관한 질문에 내놓은 답이다. 영국 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 영문학 교수이자 문학평론가, 기독교 변증가로도 활동한 루이스는 생전 글쓰기 조언이나 원고 평가를 부탁하는 편지를 수없이 받았다. 발신인은 성별과 나이, 국적을 가리지 않았으며 신앙 상담부터 철자법 문의까지 편지 주제도 다양했다.

루이스는 편지를 쓴 이가 누구든 최선을 다해 보내온 습작 원고를 읽었다. 답신에 총평을 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밀린 답장을 쓰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하던 그는 이로 인한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CS 루이스의 서한집’에 따르면 그는 답장을 쓰는 데 “꼬박 14시간이 걸린 날도 있었다”고 회고한다. 하루에 답장 35통을 쓴 날도 있었다.
책은 루이스가 평생 쓴 편지와 에세이, 책 등에서 글쓰기와 작가를 다룬 글 100여개를 엮은 것이다. 데이비드 다우닝 미국 휘튼칼리지 매리언 E 웨이드센터 공동대표가 편집한 이 책엔 글쓰기를 향한 루이스의 애정이 곳곳에 묻어난다. 그는 18세 때 쓴 편지에서 “삶에 진력이 날 때마다 글을 써보라”며 “잉크는 인간의 만병통치약”이라고 적었다. 34년이 흐른 뒤 작성한 편지에선 “잉크는 독약이다. 자꾸 쓰고 싶어지기 때문”이라면서 “나는 이 중독을 떨칠 수 없다”고 밝힌다.
글쓰기로 인한 행복만 고백하는 건 아니다. 영국 철학자 오언 바필드에게 보낸 편지에선 “나는 왜 무엇이든 한 번만 말할 수 없을까”라며 “이 헤어날 수 없는 덫이여”라고 탄식하는 모습도 보인다.

책에는 루이스가 작가를 꿈꾸는 어린이에게 제시한 글쓰기 지침이 두세 차례 등장하는데 요지는 비슷하다. ‘문장을 쓸 땐 그 뜻을 명확히 표현하고 단어의 의미를 반드시 알고 사용하며, 독자가 느낄 감정을 작가가 미리 표현하지 말라’는 것이다. 특히 작가가 형용사나 부사로 작중 인물의 감정을 단정 짓는 걸 경계한다. 루이스가 자신에게 원고를 보낸 한 어린이에게 남긴 고언이다. “무언가를 ‘끔찍하다’고 단정할 게 아니라 우리가 직접 끔찍함을 느끼게끔 그걸 묘사하렴.… 무섭다든지 신기하다든지 흉하다든지 고상하다는지 하는 말은 다 독자에게 ‘부디 제 일을 당신이 대신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단다.”
어린이뿐 아니라 성인에게도 유효한 글쓰기 비법이다. 글솜씨를 기르기 위해 “최대한 좋은 책을 많이 읽을 것”과 “라디오를 끌 것”을 당부하며 독서와 집중력이 글쓰기의 주요 토대임도 밝힌다.
판타지 소설 작법을 묻는 이들에겐 “언제나 심상(心象)이 먼저”라고 강조한다. 전 세계에서 1억부 이상 판매된 ‘나니아 연대기’ 역시 등장인물인 ‘웅대한 사자’나 ‘썰매를 타고 다니는 여왕’을 먼저 떠올린 뒤 이야기를 풀어낸 작품이다. 그는 “기독교적 요소도 원래는 전혀 없었는데 차차 저절로 끼어들더라”며 “(작품에) 기독교적 요소를 확실히 넣으려고 애쓰지 말라”고 말한다. 이야기 속에 굳이 교훈을 끼워 넣는 행위도 경계한다. 루이스는 “교훈일랑 심상이 알아서 말하도록 두라”며 “순수한 즐거움을 주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좋다”고 권한다.
책 후반부에선 제프리 초서와 단테, 제인 오스틴과 존 버니언 등 영문학 거장의 작품을 비평한 내용도 나온다. 친구이자 동료인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을 두고는 “머잖아 이 책이 필독서 반열에 들리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평하는 선구안도 보여준다.
독창적 글에 천착하면서 고전 읽기와 일상를 간과하는 현대인을 저자가 비판하는 대목도 유익하다. “독창성을 떠받들어선 아무도 독창적 존재가 될 수 없다. 있는 그대로 진실을 말하고,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해 보라. 그러면 소위 독창성이 저절로 찾아온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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